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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12 조회수 : 916
미술관에 가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설명을 보면서 분명히 지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 설명의 틀에 갇히면서 작품의 깊은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나만의 느낌과 감정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보는 작가의 의도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명 안에 갇히게 되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구나.”라면서 생각의 지평을 닫아 버리고 맙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미술관 ‘인젤 홈브로이히’에는 어떤 설명도 붙어있지 않다고 합니다. 작품 자체를 경험하게 하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설립자 칼 뮐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 인생, 당신의 아이들은 설명될 수 없다.”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인간관계는 절대로 설명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설명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자기 틀에 그 설명을 맞추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은,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우리를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에 관해 묻습니다. 사실 이혼에 관한 율법은 십계명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신명기(24,1-4)에 이유만 닿기만 하면 여자를 내몰 수 있었고 그때 이혼장을 써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 결혼을 일종의 매매 계약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되었고, 여자는 재산 소유권과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이혼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혼인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태초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남녀 결합의 근본이념에도 어긋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혼인법을 없애고 하느님의 원래 뜻으로 되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신이 이해할 설명을 상대방이 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상대방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인 설명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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