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마감에 시달립니다. 바로 이 책, ‘쓰담쓰담’ 묵상집 때문입니다. 갑곶성지에 다시 온 뒤에 후원회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매달 발행하는 묵상집입니다. 2016년 9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묵상집의 모든 글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저 혼자 쓰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이미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라는 묵상 글을 써왔기에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감’이라는 단어에 힘듦을 매달 느끼고 있습니다.
마감을 지키지 않으면 제때 묵상집을 발행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마감일이 가까워지면 초조해지고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 6월처럼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받고 회복하는 시간까지 길어지면 몸과 마음으로 더 힘들어집니다.
솔직히 마감이 없는 경우, 글이 잘 써지지 않습니다. 편안한 상태가 아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어야 자극받아서 글을 쓰게 됩니다. 또 마감이 있어야 그 날짜를 염두에 두고 계획성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삶도 마감이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죽음’입니다. 이 죽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이 죽음에 자극받아 더 발전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내 삶의 마감인 죽음을 바라보면서 더욱더 지금을 계획성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지금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을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바로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듣고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세상눈으로 볼 때, 포도밭 주인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심지어 오후 다섯 시부터 일한 사람 모두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이 부분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공평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는 그런 세상의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른 아침에 장터의 인력시장에서 일할 일꾼을 뽑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낮 기온이 너무 높아서, 이른 아침을 제외하고는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포도밭 주인이 찾아갔던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3시, 오후 5시에 있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선택받을 수 있었고, 그 희망으로 인해 후한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정의와 세상의 정의는 다릅니다. 하느님의 처사에 대해 우리가 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의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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