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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20 조회수 : 769

늦었지만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높은 자리!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다 부질없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강력한 질타를 받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처신 하나하나를 묵상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어찌 그리 제가 살아온 지난 모습과 닮아있는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는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마태오 복음 23장 5~7절) 

 

돌아보니 수도자요 사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젊은 시절부터 윗자리에 자주 앉았습니다.

수도회 내 이런저런 보직을 담당하면서,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 할 때도 많았습니다.

미사 때면 잠자리 날개처럼 화사하고 질감 좋은 제의를 차려입고 사람들 앞에 자주 섰습니다. 

 

그런 삶이 지속되다 보니 부끄럽게도 스스로 뭐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난감해하였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지경입니다. 

 

늦었지만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높은 자리!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다 부질없다는 것을. 높은 자리!

다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 결국 그 자리는 낮은 자 되어 이웃을 섬기라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자리라는 것.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오 복음 23장 11~12절) 

 

성구갑’이란 성경 구절이 들어있는 작은 통입니다.

유다인들은 작은 성구갑을 이마나 팔에 달고 다녔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의미로 성구갑을 몸에 지니고 다녔겠지요.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성구갑은 유난히 크고 화려했습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었습니다. 크고 화려한 성구갑!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과시욕이 지나쳤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이 얼마나 깊은지를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의 극치에 달했습니다. 

 

“이것 한번 봐주세요! 이 멋진 성구갑을! 내가 얼마나 하느님 말씀을 애지중지하는지?

내가 얼마나 성경 말씀을 극진히 여기는지를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칭 가장 하느님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장 하느님 말씀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실상 그들은 가장 하느님과 멀리 있는 사람들, 가장 하느님 말씀에 반하며 사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철저한 이중성, 과시욕과 허영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공허한 의(義)를 가차없이 폭로하십니다.

그들의 공허한 의는 예수님께서 온몸으로 보여주신 참된 의와 극명하게 비교·대조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적인 신앙과 이중적인 삶, 그로 인한 철저한 몰락과 멸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강력한 경고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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