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버릴 줄 아는 지혜
[말씀]
■ 제1독서(지혜 9,13-18)
그리스 세계에서 지혜는 인간의 이성적인 노력의 결과로 이해되나, 성경 개념으로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열려있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기원전 1세기 그리스 문화권에 살고 있던 지혜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와 같은 성경 개념을 수용하여 신앙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도록 가르친다. 참 지혜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이며, 이 선물로 인간은 곧은 길을 걸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으며 끝내 구원에 이를 수 있다.
■ 제2독서(필레 9ㄴ-10.12-17)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공동체의 일원인 필레몬에게, 그의 종이었으면서도 곁을 떠나 있다가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은 오네시모스라는 사람을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줄 것을 청하는 글을 띄운다. 당대의 법질서를 벗어나는 새로운 질서 곧 ‘거저 베푸는 사랑’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사도의 청을 받아들여 필레몬은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키기 위한 고통을 각오하고서 오네시모스를 종의 신분에서 면천함과 아울러 새 형제로 맞아들인다.
■ 복음(루카 14,25-33)
예수님의 복음 설교를 처음 접한 청중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쉬운 말씀 정도로 평가했을 것이다. 행복이 선언되고 하느님 나라에 관한 표징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고된 삶 속에 허덕이고 있던 군중들의 마음은 설렜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삶 저편에 십자가가 점점 더 윤곽을 드러냄과 아울러, 그분 역시 복음의 역설적인 특징들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수용할 각오를 앞세워야 한다.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김]
■ 구약의 사람들에게 지혜는 지식과 별개의 개념이 아니었기에, 현자들은 흔히 출중한 지식을 겸비한 사람들로 취급되어 교육, 행정, 종교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혜는 어디까지나 인간적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그 한계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특히 현세적인 상선벌악 사상, 곧 인간의 행위는 죽음 이후가 아니라 이 지상에서 평가되고 보상된다는 사상에 젖어, 가난, 질병, 불행 등을 하나같이 하느님의 저주의 표지로 이해했기에, 십자가로 대표되는 삶의 부정할 수 없는 요소인 고통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수용될 틈이 없었다.
■ 그러나 그리스도는 지혜에 관한 한 인간적 관점의 근원적인 전도를 요구하신다.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리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버려야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진정한 지혜를 기초로 이제 우리는 삶의 부정적인 요소까지 기꺼이 수용할 용기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참 목적지와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바오로의 청을 받아들여 비천한 종을 한 형제로 받아들인 필레몬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를 만난다.
교우 여러분, 버릴 줄 아는 슬기로 신앙의 의미를 찾고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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