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글 쓰는 방법을 배운다, 책을 열심히 읽는다, 일상의 삶을 잘 관찰한다 등등의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직접 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이 어떻게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완벽하게 하겠다고, 책만 읽고 글 쓰는 방법만 배우고, 일상 삶을 관찰만 하다 보면 그냥 그 모습에 멈출 뿐입니다. 알면 알수록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래서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글을 정말로 잘 쓰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강론을 위해 쓰는 원고를 보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평소에 많은 책을 읽고, 매일 일기를 쓰면서 일상의 삶을 잘 관찰하십니다. 여기에 깊은 묵상도 하니 깊이 있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글을 혼자만 간직하지 마시고, 출판해서 신자들에게 나눠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일에 앞서 잘 준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실 ‘준비’라는 이름으로 ‘두려움’을 표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서 계속 미루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을 얻지 못합니다. 이는 준비가 아니라 두려워서 고백하지 못한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종종 두려워하지 말라고, 또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맞이합니다. 성경에 성모님의 탄생에 관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던 성모님의 탄생 축일을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역사 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출생 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족보를 제시합니다. 그 역사가 영광과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함께 공존하는 역사이지요. 그 모든 시간이 지나야 메시아가 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신앙의 모범을 잘 따라야 합니다. 파혼의 위기까지 맞이하게 된 예수님 잉태 때의 많은 일들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요? 두려워하지 않고, 또 걱정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굳게 믿음으로 가능했습니다.
성모님 탄생 축일에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