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단체로부터 강의 청탁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그날 오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 단체 책임자 되시는 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신부님께 강의를 부탁했는데, 제가 강의하는 시간에만 가능하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게 강의 시간을 바꿔 달라는 부탁이었지요. 하지만 저 역시 그 시간만 가능했기에, 그 신부님이 강의하시고 저는 다음에 강의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곧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신부님 화나셨어요? 그러면 그냥 원래대로 해주세요.”
강의하러 가기 바로 전날 그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제가 아닌, 다른 신부님께서 강의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황해서 그 단체장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의사 전달에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라는 답장이 오더군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강의 준비도 열심히 했고, 강의에 필요한 준비물까지도 모두 사놓은 상태였는데, 이 모든 일들이 헛일이 된 것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힘이 들어갔는지, 안경 닦다가 안경테가 부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또 문턱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실수 연발입니다.
안 좋은 생각을 하니, 안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좋은 것도 많습니다. 강의하지 않아도 되니, 먼 곳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말 교통 체증에 시달릴 일도 없습니다. 또 할 일이 많았는데 여유 있게 주말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강의하지 못하게 된 것,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이르시지요. 나병 환자 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해서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병 환자는 율법에 따르면 성으로 둘러싸인 큰 도시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예루살렘 성전에는 얼씬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어서 예수님을 보고서도 멀찍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나병이라는 병으로부터 깨끗해진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 감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나머지 아홉은 왜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았을까요? 하느님의 영광이 이루어졌음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깨끗해진 것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자기를 고쳐 주신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부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만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순간에서도 감사의 이유를 찾으며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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