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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0-16 조회수 : 313

오늘의 주제는 항구한 기도 생활에 관한 것이다. 탈출기와 복음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 기도는 항구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족을 대항하여 거두는 승리는 모세가 산 위에서 항구하게 하는 기도에 좌우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실현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도임을 강조한다. 여호수아는 기도의 도움에 의지해서만 이길 수 있었다. 모세가 계속 기도할 수 있을 때만이 여호수아는 이길 수 있었다. 기도는 그가 행하는 모든 능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모세의 이 행위는 기도와 생활, 묵상과 행동 사이의 불가분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모세의 기도가 없었다면 여호수아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세의 예는 어떠한 인간적 행위도, 자유를 위해 그리고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싸움까지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도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 속에 스스로 소외되지 않도록 해준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과업이 엄청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기도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사명을 완수하여 나갔다. 
 
기도에 대한 주제는 복음에서도 다루고 있다. 복음의 본래의 뜻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절) 이다. 그 비유의 내용은 불의한 재판관과 가난한 과부에 관한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 기도의 특별한 관점이 강조되고 있다.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허락해주시는 주님께 끊임없이 간청해야 한다. 항상 기도해야 할 필요성은 주님의 명령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항구하게 지키고자 하는 본질적이며 내적 필요성에서 온다.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이 밤낮으로 하느님께 부르짖는다는 구절(7절)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반적 사람들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과부가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매달린,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라고 한 그 불의한 재판관의 입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역설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다. 악한 사람조차도 한 가난한 여인의 간청을 들어줄 줄 안다면 당신이 몸소 택하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배려야 이에 비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비유의 의미는 기도하면서 항구할 것과 또 그 기도를 들어주시리라고 믿으라는 것이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끊임없이 주님께 말씀드리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또 믿지 않는 이들 때문에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에 대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꾸준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초기 그리스도 신자들에게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한편 주님께서 당신의 오심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참조: 2베드 3,1-16). 때문에 종말론적 긴장을 이완시키고 감소시켜 신자들이 현재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거기에서 해방되고자 하느님께 의탁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래서 루카는 이러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신자들이 긴장과 동시에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자가 오늘날 부딪치게 될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기다릴 줄 모르고 과학과 경제적 발전이 제공하는 현실에 안주하고 거기에 희망을 두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렇게 되고 만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8절).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신앙의 종말론적 차원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믿음과 희망을 위협하는 모든 시련과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러 즉시 와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항구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기도로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도는 진정 감사의 표현이 될 수 있으며, 또 그 기도가 꼭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두고 항구하게 끝까지 바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항구하고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우리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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