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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1-27 조회수 : 320

오늘의 주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님의 오심을 하나도 놓치지 않음으로써 결정적으로 오시는 분을 맞을 수 있도록 깨어있는 자세로 사는 것이다. 이는 바로 형제애와 평화가 실현되어야 할 공동체, 즉 찬란히 빛나고 있는 예루살렘 공동체, 교회이다. 교회의 기능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와 전 인류의 일치 표지이며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기록은 절대 끝나지 않는 주님의 오심, 즉 그리스도의 최초 오심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끊임없이 오시는 분(사도 1,4 참조)을 맞으러 가는 여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주님과의 만남을 한순간도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한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엄습 되는 잠이나 피곤함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이 점에 대해 말한다. 예수께서는 노아 시대의 일을 회상시키면서(37-39절)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신다. 첫째, 하느님께서 불시에 찾아오시리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매일의 일상적 삶의 문제에 너무 빠져있으면 안 된다는 것, 둘째, 홍수 때처럼 주님의 오심에 따르는 위협적이며 위험스러운 상황에 관한 점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파괴와 저주의 사건이기도 하였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한 구원의 기회이기도 하였다(창세 7,11-23 참조). 오시는 하느님 앞에서의 심판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즉 인내로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처럼 당신께 개방되어있고 당신의 말씀을 온순히 따르는 사람은 구원하시고,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을 거절하여 마음을 당신께로 향하지 않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41절).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지막 날에 드러내 보이실 것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을 잘 받아들여 온순히 따르고 실천했는지 아닌지가 그때 드러날 것을 가르쳐주신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이 언제이든 간에 두려움과 깨어있음으로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무서워함이 아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지 못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잃을 수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어라”(42절). 이 말씀은 여러 군데서 반복되고 있다. 이는 밤을 지키는 야경꾼들같이 잠을 자다가 도둑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깨어있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는지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그는 깨어있으면서 도둑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43-44절). 도둑이 오는 때는 언제인지 모른다. 항상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때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 기다림은 주님께서 우리 삶 속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오시는 그 모든 오심을 하나도 놓치지 않음으로써 그분의 마지막 오심에 대해 더 잘 준비하는 우리의 정신적 자세를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두 번째 오심에 놀라지 않기 위해서는 첫 번째 오심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Enarrat. in Psalmos, Ps 95,14) 라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잠자지 말라는 권고에서 더 나아가 잠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우리의 과거 생활이 그리스도라는 빛 속에서의 삶이 아니라, 밤에 묻혀있는 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활에 들어와 계신 지금은 그 밤에서 벗어나 대낮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와 그리스도의 만남을 위한 근본적인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로마 13,11절). 이 말씀은 이미 이 순간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그분과 만남을 통해 점점 더 실현되어 가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오심은 우리의 삶과 역사 내에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오심의 종합이며 완성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나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깨어있고, 주님을 맞아 드릴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밤의 잠에서 깨어나 빛 속에서 구원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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