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2월 1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2-11 조회수 : 326

오늘 전례는 전체적으로 기쁨에 차 있다. 이 기쁨은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 기쁨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기쁨이며, 구원의 열매가 주는 기쁨이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피조물에 환희와 기쁨을 준다고 한다. 이사야는 기쁨을 드러내는 구원의 개념을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 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트리리라.”(35,6) 표현한다. 구원은 인간 전체가 대상이다. 병은 인간의 신체적인 관계의 불균형이다. 이 불균형을 균형으로 맞게 해주신 것이 예수께서 하신 기적이다. 이것이 구원의 표지이며, 그를 체험한 사람들은 얼마나 큰 놀라움과 기쁨을 체험하였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예언의 기쁨이 복음에서 다시 조명된다.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께서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낸다. 요한은 예수가 아직은 종말에 오실 심판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마태 3,12) 분, 강력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예수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 모습이 우리가 생각할 때 나약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것들이 더더욱 강하게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5-6절). 
 
여기서, 예수께서는 심판자로서보다도 구원자 해방자로서 메시아이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 즉 소경, 절름발이, 한센인, 청각장애인, 가난한 이 그리고 죽은 이들까지 가까이하신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권능의 행위이지만 그보다도 특히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일치, 동참과 구원의 행위이다. 이러한 표징들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이심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더는 의심할 여지를 가지지 않게 된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께서는 요한에 대한 찬사를 하신다(7-11절). 요한이 위대하다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과 참회의 정신에 있다.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아니고 나약한 사람도 아니다. 또한, 그가 위대하다는 것은 그가 구약의 탈출기(23,20)와 말라키서(3,1)에 나타나는 메시아의 선구자라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고귀한 사명 때문에 요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될 하늘나라의 일원은 아니더라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11절)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요한 세례자보다 크다고 하신다(11절). 
 
요한의 사명은 신랑의 오심을 알리는 것이고 이것이 그가 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기쁨은 불확실성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끝내 기다림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가끔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결과도 내지 않거나 무산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표징의 의미가 약화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의 때는 바로 은총의 때, 구원의 때이다. 
 
이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농부의 개념을 들어 그리스도인의 인내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협력하는 것이다. 여기에 참 기쁨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계획을 가까이 이루어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구원이라는 것은, 또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신앙한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너무나 힘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기쁨에 대해 오늘 독서가 말하고 있는데, 그 기쁨은 그냥 아무런 수고 없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구한 인내를 가지고 자신을 이기는 삶에서,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는 자세가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기쁨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항상 갖춰 입어야 할 옷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