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따진다. 그들은 예수님께 누구의 권한으로 이런 기적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아마 그 기적들의 결과가 미래에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구제 불능의 사악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신다. 그들이 더는 당신께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24-25절)
그들은 이제 자기들의 대답이 가져올 위험을 생각하며 망설인다. 요한이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그 답은 하늘이 보낸 증인을 믿지 않은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군중에게 돌을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답에 발목을 잡힐까 봐 두려워 “모르겠소.”(27절) 하고 대답한다. 그들에게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두워진 마음은 빛에서 나온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영적으로 눈이 멀면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소리 없이 사냥하는 사냥꾼은 함정을 파면서 동시에 함정 옆에 결코 도망칠 수 없도록 그물을 쳐 놓는다고 한다. 사냥감이 도망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덫을 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나도 모른다.”라고 답하지 않으시고,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27절) 하신다. 그들은 자격이 없으므로 말씀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지 않으시면서도 당신을 신문하는 자들을 가르치시고, 합리적인 논증으로 상대의 교묘한 비난을 논박하고 계시다. 신앙을 가진 우리는 필요하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진리를 알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을 닮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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