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당나귀는 하루 온종일 불상(佛像) 대신
무거운 바위를 몸에 싣고 날라야만 했습니다!
동물 중에 꽤 재미있는 녀석이 당나귀입니다.
말과에 속하지만 말보다는 훨씬 인물이 떨어집니다.
체구도 작고 웃기게 생겼습니다.
속도도 느린 관계로 주로 짐을 운반할 때 활용됩니다.
어떤 사람이 당나귀 등에 멋진 불상(佛像)을 안치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불심(佛心)이 있는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깊이 절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당나귀 목에 걸린 불전함 속에 헌금을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절을 하니 당나귀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자신을 보고 인사를 한다고 여기고 우쭐해졌습니다.
고분고분하던 처음과는 달리 당나귀는 점점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건방진 녀석으로 변해갔습니다.
당나귀는 주인이 자기 때문에 먹고 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좀 쉬라 소리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주저앉기 일쑤였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은 그 건방진 당나귀를 채석장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불상을 지고 다닐 성격 좋고 고분고분한 새로운 당나귀를 샀습니다.
건방진 당나귀는 하루 온종일 불상(佛像) 대신 무거운 바위를 몸에 싣고 날라야만 했습니다.
곰곰히 돌아보니 저 역시 건방진 당나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왔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실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제 등 뒤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격려도 해주시고 도움도 주셨는데, 저는 그것을 간과하고 살아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하는 마태오 복음서에도 비슷한 무리들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사제들 중에서도 수석 사제들이었으니 다들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입고 다니던 옷도 보통 사제들보다 훨씬 치렁치렁 화려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요.
처음에는 겸손하고 고분고분했을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멋진 복장에, 쩌렁쩌렁 심금을 울리는 강론 말씀에 큰 매력을 느끼고 깊은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길에서 만나면 정중하게 인사도 했습니다.
어딜 가나 제일 높은 자리로 안내를 받았고, 특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 역시 점점 건방진 당나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주인도 몰라보고, 주인께 감사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영적 생활이나 이웃 사랑의 실천은 잊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그저 돈만 밝히고, 잘 먹고 즐기는데만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이런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날카롭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마태오 복음 21장 31절)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 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말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개석상에서 펀치 중에서도 초강력 펀치를 한방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먹이신 것입니다.
주인도 몰라보는 건방진 당나귀 같은 그들에게 적당한 선물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도 메시아로 오신 당신을 끝끝내 거절하고 부인한 그들에게 ‘빅엿’을 하나 제대로 선사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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