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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2-19 조회수 : 339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모든 율법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드높은 정의 즉 사랑의 법으로 모이고 있다. 즉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5)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의 모범을 따라 편협한 마음이나 감정에 사로잡힘이 없이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신약성경의 핵심 부분을 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은총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어려운 복음이기도 하다. 이 계명은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그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레위기에서는 “나, 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2절) 라는 권고의 말씀이 이웃사랑에 앞서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성성에 있어서 비교의 기준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성성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성성은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내적인 윤리적 요소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말씀에서 이 이웃은 신앙의 혹은 종족의 의미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무한히 확대하실(마태 22,37-40 참조) 최고 영성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성성의 모델이시며 사랑의 모델이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모두 사랑하시고 또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니, 그 자녀들 역시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 마태 5,38-4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38-42절)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입은 손해나 상해에 대한 보상은 실제로 해를 입은 정도를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동태복수법(탈출 21,24-25; 레위 24,17-20; 신명 19,21 참조)을 폐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비폭력적인 법을 끌어들이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39절) 하신다. 폭력을 제압하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그가 요구하는 것 이상을 양보하는 것이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39-40절) 이 말은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닐까?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자기 목숨을 다해서라도 기꺼이 들어주려는 사랑을 의미한다. 거기서는 폭력의 의미가 상실된다. 즉 사랑으로 정의의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모두 더욱더 사랑한다면 인간적인 정의의 법정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43-48절) 여기서 원수라는 개념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 또한 신앙상의 이유로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44절)이다. 신앙인들은 그들에 대해 자비와 이해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워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해친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44-45절)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시하신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45절) 아버지께서는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하신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는다면 그분의 자녀이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산다면 우리는 그분을 닮아 그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사랑은 원수에 대한 사랑에서 최고로 표현된다. 이 사랑을 통해 신앙인다운 특징이 드러난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을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46절) 그리스도인들은 이 원수에 대한 사랑으로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며, 다른 모든 사람과 구분될 것이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이 틀림없다. 

 

코린토 교회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서로 적대시하며 싸움에 휩싸여있었다. 그리하여 공동체는 그리스도께 의존하지 않고 바오로나 베드로 같은 인간들에게 더 의존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함으로써 분열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할 때 하느님의 성전은 서 있지 못하고 만다. 반대로, 모든 것은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그리스도께 맡길 때 구원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1.23)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하느님의 계명 율법이 더 적극적인 삶으로 은총의 복음이 되도록 주님의 가르침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구원의 복음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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