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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28 조회수 : 211

마태오 20,17-28 
 
우리가 향하는 두 상반된 죽음의 방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가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수난이 곧 섬김의 방법임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주님이며 스승이신 당신이 그들을 씻어주었기 때문에
그들도 그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 13,14)
겸손해지려면 먼저 주님이며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수력발전소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낮게 흐르는 물은 아무 에너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높이 있는 물은 위치에너지를 가집니다. 그것이 낮아질 때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이것이 겸손이고 우리가 가야 할 죽음의 방향입니다.  
 
그러나 오늘 두 제자와 어머니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다고 하면서도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들이 가는 죽음의 방향은 들어 높임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지금 낮아져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가는데 어떤 사람은 죽음을 통해 다른 이들을 낮추고 자신을 들어 높이고 어떤 사람은 죽음을 통해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들어높입니다.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전 재산은 오래된 자동차 한 대였습니다. 월급의 90%는 기부하고 경제성장률을 상승시켰고 극빈 계층을 위해 교육제도를 정비하여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의 삶은 죽음입니다.
돈이 없으면 죽고 낮아지면 죽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시민들을 들어 높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순교에 가깝습니다.
이 겸손한 죽음은 오직 대통령이 되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면서 겸손한 것은 그저 높아지기 위한 비굴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타볼산에서 예수님께서 먼저 높아지셔야 했고 우리도 성체성사로 높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렛대를 이용한 도구에서 다른 것을 들어 높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혼자 떨어지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높이기 위해 높아졌다 스스로 낮아짐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오산성당에 있을 때 김완식 요셉 형제님을 초청하여 사순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무당이었는데 한 천주교 집안에 굿을 해 주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 아이가 천재여서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고 대기업에서 돈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니던 중 정신이상이 되어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는 아이를 사제로 봉헌하기로 했었지만, 아이의 재능 덕택으로
집이 부유해지다 보니 부모님은 옛 약속을 잊고 냉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 명의 대무당이 모여 먼저 자기 집에서 준비 굿을 하였는데 이상하게 그 집으로 보내는 신마다 돌아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셋은 그 집에 가서 각자 7일씩 굿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김완식 보살이 7일 동안 굿을 하였지만 어떠한 신도 내리지 않아 코피만 쏟으며 쓰러졌고 나머지 두 무당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대나무를 잡고 굿을 하는데 그 나무가 흔들거리고 방울이 울리더니 이상한 영의 기운이 자신을 스쳐 지나갔고 김 보살은 몸을 비틀고 비명을 지르며 완전히 혼절하여 버렸습니다.
그 집은 성소자가 있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 집을 성령님이 보호하고 계셨고 그래서 어떤 악령도 얼씬거리지 못했고 무당까지도 그렇게 쓰러뜨리셨던 것입니다. 
 
한 번 성령의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니 몇 달 동안은 신들이 자신 안에도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집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고 합니다.  
 
몇 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김 보살이 요셉으로 세례를 받고 남양성모성지에서 복사를 서고 있는데 미사 후에 한 예수회 신부가 자신을 부르더니 “혹시 김 보살 아니세요?” 하더랍니다. 그분이 바로 자신이 굿을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성당에 다니신 부모님 덕택에 병이 낫게 되었고 나중에 예수회에 들어가 그 좋은 머리로 8개 국어를 하며 성경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제가 되는 것은 분명 들어 높임을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제가 되어 더 높아지려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순교가 아닌 자살로 가는 삶입니다. 
 
예수회의 신부가 된 분은 자신이 사제가 된 것이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임을 잘 알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더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바쳐 다른 이들을 높이려는 순교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시던 죽음의 방향이었습니다. 
낮아져서 높아질 일만 남은 사람이 아닌, 높아져서 낮아질 일만 남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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