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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당리성지 신부님 글

장주기의 증손 장 가밀로의 증언1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8-01 조회수 : 162

찬미예수님!

 

늘 감사와 사랑을 드리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마가 끝나고 난 후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날입니다. 모쪼록 폭염이나 태풍 피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점점 심해지는 기후에 대한 우리의 변화된 행동도 잊지 말아 주시고요.

믿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보면 신앙이란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내어 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먼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고 이에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다가오시며(계시), 사람은 신앙의 응답을 행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잊은 채 다른 것에 가득 차 살아가느라 하느님을 찾지 않고, 어떤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잘 모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만 만족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참된 하느님을 알아 모시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 의미도, 하느님의 가르침도 잘 알지만 이에 대한 자신의 삶의 응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가지 과정이라도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면 올바른 믿음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동안 장주기 요셉 성인과 친척 순교자들에 대한 역사기록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장주기 성인의 증손 장 가밀로의 증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장 가밀로가 1935년에 <경향잡지>에 투고한 기사로 주로 장주기 성인의 순교 이후 가족들이 겪은 시련과 고난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경향잡지> 29811(1935.8.15.), 456-460

 

군난(박해) 때 향기

 

요셉 장(주기)회장은 수원군 능지지(느지지) 땅에 살다가 병인년 전부터 봉교(奉敎)하야 조선성교회에 처음으로 시작되던 제천 신학원(배론 신학당)을 짓고 신(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양위(兩位)를 보좌하여 교회 사무를 지성(至誠)으로 처리하다가, 병인년에 혹독한 군난을 당하매 그 때에 목숨을 아껴 피하려면 피할 기회는 있건마는 <첫 번에는 정부에서 발령하기를 양인(洋人:선교사)과 양인의 주인만 잡고 다른 이는 잡지 말라하였음> 원체 신덕과 용덕이 뛰어난 자인 고로 자기가 진실로 학당주인이라 설명하고 자원으로 잡혔다. 형소(刑所)에 이르러 문초 받은 일과 위주치명한 사적은 조선성교회 여러 문적에 밝히 기록되었으니 그만두고 다음으로 장(주기)요셉의 아내와 그 아들과 손자의 천신만고를 당한 일을 기재하려 한다.

(장주기) 요셉이 잡혀간 후 그 남은 가족들은 애통망극한 중에 창황망조(蒼黃罔措: 너무 급해 어찌할 바를 모름)하여 산지 사방으로 피할 적에 <그때는 병인년 정월> 만악천봉(萬岳千峰)에 백설은 쌓여있고 설한풍(雪寒風)은 살을 쏘듯이 부는데 제천학당 뒷동산으로 도망하여 올라가서 죽은 듯이 숨어서 그 밤을 새울 새 몸은 얼고 배는 고프니 그 고통이 어떠하였으랴? 낙엽을 주어다가 불을 놓고 얼은 몸을 쪼여서 간신히 살아났으나 나중에 살펴보니 식구 하나를 또 잃었다. 그 잃어버린 이는 즉 (장주기) 요셉의 손자인바 그때 나이 10세 되는 동자였다. 종적을 알지 못하여 온 집안이 다 근심걱정으로 지내더니, 농시(農時)를 당하여 화전을 팔 새 어디서 솜 타는 냄새가 나는지라. 자세히 살펴보매 잃어버렸던 그 식구(장주기의 손자)였다. 그제야 얼어 죽은 줄을 알았으니, 당장에 그러한 참경(慘景)을 본 자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랴! 그러하나 다 위주(爲主)하여 감수 인내하였다.

가산등물(家産等物)을 다 빼앗기고 당장에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른지라. (장주기) 요셉의 아내가 어린 손자를 앞에 세우고 자기 친정으로 찾아갈 새 <수원군 능지지 송 판관 집> 그 집문 전에 당도하니 사랑()에는 금옥탕창(金玉宕氅: 높은 귀인의 복식) 한 이들이 두런두런 담화가 자자한지라. 대문 밖에서 종을 부르니 얼마 후에 종이 나와 보고 들어가서 통지하매 어떤 표표한(풍채가 뛰어난) 소년 하나가 나와서 은근히 책망하되 지금 나라에서 천주학 꾼을 역률(逆律: 역적죄)로 처벌하는 판이라. 천주학을 하면서 왜 친정까지 망하여 주려고 왔느냐? 하고 문간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고 엽전 몇 냥을 내주며 가다가 밥이나 사서 먹으라하고 내쫓는지라. 할 일(할 수)없이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어린 손자를 앞세우고 발길을 돌이켜 올 적에 그 설움이 오직하였으랴?...(중략)

 

여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주기 요셉 성인의 가족에 대한 증언이 나오는데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받았던 참담함과 설움이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추운 겨울에 장주기 성인의 손자가 얼어 죽고, 장주기 성인의 아내가 손자를 앞세우고 동정을 바라며 친정집에 갔지만 친정에서도 쫓겨나는 불쌍한 일을 겪었습니다. 박해시대 순교자와 그의 가족들이 겪었을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신앙을 꿋꿋이 지켜나가신 신앙선조들의 모습에 마음이 울립니다. 다음 달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