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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내성지 신부님 글

깜빡깜빡하네요.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01 조회수 : 219

 

8, 92회에 걸쳐 회보를 통해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이라는 제목의 자료집에 도움을 받아 단내 성가정 성지에서 현양하는 두 분 하느님의 종 정은 바오로와 정양묵 베드로 순교자에 대한 삶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글을 본 후배 신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신부님.. 한 페이지도 안 되는 글쓰기가 귀찮아 지셨나 봐요. 꼼수가 보이네요. 자료집을 그대로 베끼신 것 같던데요...’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수원교구내 성지를 도보로 순례하고 있는데, 함께 하는 신부가 건넨 말이었습니다. 꼼수가 맞다고 했습니다. 글 쓰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대로 베낀 것 아니고, 요약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사실 두 분 순교자에 대해서는 알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자료집이 나와서 도움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시기가 좀 당겨 진 것이라고 했지요.. 구차한 변명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지만, 진정성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했지요.

 

9월에는 저에게 쓴 소리를 한 신부와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신부와 셋이서 도보순례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미리내 성지에서 요당리 성지까지 가는 여정이었는데, 거리가 좀 있어서 송탄성당까지 가는 것으로 하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래도 20킬로미터가 좀 넘는 거리였기에 송탄성당에 도착해 보니 허벅지가 뻑적지근 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그랬던 이유는 깜빡 잊고, 지팡이를 챙기지 못해서 였습니다. 저는 오른쪽 무릎이 현치 않아서 도보순례때처럼 긴 거리를 걸을 때는 무릎 보호대를 하고, 발목 보호대도 하고,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들고 걷습니다. 그야말로 전장에 나가는 장군의 갑옷처럼 준비물이 거창합니다. 좀더 오랫동안 -은퇴이후까지 쭈욱- 긴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간절한 준비물인 것이지요. 함께 하는 신부들은 지팡이도 불편하다고 하고, 무릎 보호대도 아직은 아니라고 하고, 발목 보호대는 아예 생각하고 있지도 않더라구요. 슬슬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라 보네요.

 

출발 직전까지 지팡이를 챙겨야지 했는데, 못 챙기고, 미리내 성지에 가서야 아차차,,, 안 가지고 왔네...했지요. 마침 미리내 성지 신부가 있어서 지팡이 있는가..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라구요. 지팡이 없이 잘 걷는 법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요... 해서 점심을 같이 하면서 그 비법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평지를 걸을 때는 먼저 엄지 발가락을 하늘 방향으로 꺽으면서 발을 앞으로 내디디라는 것이네요. 그리 해 보니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걷는데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어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이제 슬슬 깜빡깜빡하고 놓치는 것이 점점 많아지겠지 하는 자각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하는 순간 이기도 했지요.

 

 

순교자 성월에 그분들의 흔적을 느끼며 걷는 여정을 계속해서 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함께 하는 신부들 덕분에 그 여정이 할까말까 고민없이 지속되고 있어서 또한 감사하면서... 송탄성당에서 마침기도를 짧게 하면서 더 짧은 화살기도를 하였지요.

 

신앙인으로 걸어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이 무얼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저처럼 깜빡깜빡하면서 잊어 버리고 못 챙긴 지팡이 때문에 안 느껴도 되는 허벅지의 뻑적지근함은 없기를 바라며, 기도 보태겠습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에는 묵주를 꼭 챙겨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