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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성지 신자 글

고요한 변화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01 조회수 : 198

있는 힘을 다해 지구를 덥게 만들었던 여름도 기운이 빠지는지 슬슬 뒷걸음을 친다. 추석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아무리 애를 써도 절기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절기에 따른 날씨의 변화를 싫든, 좋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원칙이다. 유난히 힘들었던 여름이어서인지 절기의 변화가 반가운 요즘이다.

오래전 소설모임에서 알게 된 동생이 있다. 정서적으로 잘 맞아 가깝게 지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던 어두운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토해냈던 동생과 나는 친자매보다 더 친했다. 그 동생이 소설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며 모임을 떠난 게 사년 전쯤이었다. 얼마 후 평소에 빼놓지 않고 했던 태극권의 지도자자격증을 취득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결실을 맺기 마련이라니까.

그 동생이 태극권을 지도하며 재미있고 멋있게 사는 줄 알았다. 작년 초에 조금 탁해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나는 대뜸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다.

언니, 저 암이래요.

장난하지 마. 네가 무슨 암씩이나?

누구보다 건강관리를 잘하던 사람이라 장난으로 느꼈다. 혈액암이라는 것이다. 몇 달이 지나고 연락을 해보니 재발이 되어 항암치료 중이었다. 올 봄에 항암치료가 끝나몇 년 만에 얼굴을 봤다. 몇 년을 만나지 않았어도 어제 만났던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얼굴이 야윈 듯 보였고 몸도 더 날씬해졌다. 워낙 밝고 맑은 성격이라 여전히 잘 웃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만났다. 파티마성지에서 사온 묵주팔지를 전해줬다. 그 동생이 부담스럽게 여길까봐 그냥 차고만 다니라고했다. 천주교학교의 교사인 남편과 결혼할 때 영세를 받고는 냉담을 했다는 말을 오래 전에 들었다. 혹시 내가 선물한 팔지가 성당에 다시 나가라는 압박으로 여길 것 같아 주얼리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디자인이 독특한 은팔지였다. 여행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으며 깔깔 거렸던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는 내가 임플란트를 하느라 복용한 항생제에 부작용이 생겨 얼마간 연락을 하지 못했다. 항생제 부작용에서 벗어나고 나서 연락을 했더니 또 재발해 체중이 10kg나 줄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경주의 요양병원으로 가겠다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묵주팔지 꼭 챙겨서 가. 오늘부터 매일 너를 위해 묵주기도 드릴거야. 아마 네가 끼고 있는 묵주도 같이 기도에 동참할 거라 믿거든.

언니, 고마워요.

나는 그 동생의 건강회복을 위해 묵주기도를 드렸다. 가끔 연락을 하면 그 동생은 밝은 목소리로 꼭 이겨내겠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가하면 풍경이 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도 보내줬다.

며칠 전이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고생한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아직도 항암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성당에 나간다고 했다. 성당에 가면 무척 편안하다면서.

고맙다, 정말 고마워.

나는 그 동생에게 다시 성당에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치지 않고 잘 견뎌내 건강이 좋아지기만을 기도했었다. 파티마 묵주의 힘이었다. 성모님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셨을 것이다. 심성이 고운 그 동생이 사소한 오해로 하느님을 멀리했던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어 도움을 주셨다.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 그 따뜻함에 안주하는 그 동생의 조용한 변화가 나를 기쁘게 했다. 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애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을 나나 그 동생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느님, 성모님 고맙습니다.

 

글ㅣ유경숙 멜라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