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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성지 신부님 글

신앙의 자세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01 조회수 : 135


작년보다 눈이 더 많이 내린 이번 겨울인 듯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내리는 풍경은 멋있지만 쌓이고 나면 달갑지 않은 눈이 성지에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성지까지 올라오는 길과 산자락에는 이미 다 녹아 보이지 않지만 성지 마당과 성당 지붕 그리고 십자가의 길 기도처와 야외 미사터에는 꽁꽁 얼어붙어 버린 듯이 온통 하얗습니다. 지대도 높고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기에 그렇겠지요. 연일 추웠던 날씨 속에 새삼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이 눈이 언제 다 녹으려나하는 생각을 혼자 해보았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봄이라는 계절은 아마 금세 우리를 찾아올 테지만, 눈이 녹고 다시 생기를 찾아 새로움을 맞이하기 이전에 필요한 준비를 여러모로 잘 갖추어야겠다는 생각 또한 가져봅니다. 우리들 내면의 모습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추위 속에 새해 첫 달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조금씩 봄을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 내면을 그렇게 살피며 이번 달도 하루하루 잘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생각과 행위의 흐름이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실들도 많고, 그 때가 돼서야 후회나 아쉬움이 남게 되기도 합니다. 마치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꼭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어쩌면 반복되기도 하는 이런 부족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지금껏 살아온 삶의 시간들을 꼼꼼히 돌아보는 일과 함께 한 가지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많은 일들에 대해 먼저 다가서려는 기도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내가 먼저 나를 열어 드리는일입니다. ‘나를 통해 이런 일을 하시고 나를 이렇게 이끄셨구나하는 스스로의 깨달음과 함께, ‘나를 이렇게 이끄소서!’ 하고 먼저 기도하고 나를 내어드리는 자세를 말합니다.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의 마음가짐이겠지요. 우리가 소홀하기 쉬운 것임을 다시 떠올립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를 막아서는 것이 바로 두려움과 불안함입니다. 과연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막연해하고, 나를 어찌 이끄실지에 대한 인간적인 불안함이 자리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형식으로 이루실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에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점점 자신의 의지와 계획 안에서 하느님의 도우심만 청하는 자세를 취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하느님은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뜻을 향해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시지는 않을까.

마치 교회가 우리를 다그치는 느낌마저 들만큼 대림과 성탄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어느덧 사순시기로 초대받는 때가 금방 찾아오는 2월입니다. 이 때를 보내며, 우리 스스로가 먼저 움직여 하느님께로 나를 열어놓고 기도하는 시기를 준비해 보심이 어떠할지요. 나를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살아가는 나를 위해 죽음의 길도 마다 않으심을 기억하며, 매 주간의 복음 말씀을 먼저 읽고 묵상하여 5주간의 흐름 속에서 십자가에 담긴 고귀한 하느님의 뜻을 기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시편 95(9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