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마찬가지이듯이 부활을 맞이하고 계절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게 되면, 성지에 찾아오시는 순례객들이 많아집니다. 올해도 역시 본당에서, 여러 단체에서 공동체와 함께 우리 성지에 발걸음 하시는 분들을 맞이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며 강론 시간을 통해 또한 말씀을 드릴 때가 자주 있는데, 하느님의 이끄심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 머물며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마련할 수 있음에,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는 마음의 가닥을 다시 잡아나갈 수 있음에 감사드리는 것이지요. 때마다 일상의 크고 작은 벽에 부딪혀 잊어버리고 지나침이 없기를, 그래서 늘 부당함 가운데에서도 생명을 누리는 길에 머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순례객들을 맞이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수난의 길을 가시기 전에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떠나시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단언하시는 이 말씀은 부활시기를 마무리하는 우리를 더 한걸음 이끌어주는 듯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수많은 실체들은 우리를 현혹시키고 흐릿하게 만들어 우리의 관심사를 하느님이 아닌 것, 참된 것이 아닌 것에로 돌리게 합니다. 마치 바오로 사도가 ‘육’과 ‘영’을 구분하여 설명하였듯이 빛과 진리의 측면과 그 반대의 것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어지럽히는 것들도 우리와 삶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지요.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6)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하고 소중한 소명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예수성심의 달을 보냈으면 합니다. 우리는 애쓰고, 힘을 내어, 영원하고 참된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합시다. 더 적극적이고 더 의탁하며 주님께서 가신 이 길, 이 땅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이 뒤따른 길을 걸어갈 것을 새기며 두 발에 힘을 내어 걸어갑시다. 때로는 우리를 현혹시키는 것들이 우리의 나약함을 날카롭게 앞세우려 하겠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빛은 그렇게 사그라지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빛과 진리가 아닌 것에 투신하였지만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된 바오로가 순교자들을 뒤따르는 그 길에 선 우리를 독려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0.12-15)
성지 내 이곳저곳을 보수하고 다지면서 이렇게 우리 자신도 늘 돌보고 계발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떠올립니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겠지요. 주 하느님의 보호하심 안에 거룩함을 이루어가도록 기도해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