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지

Home

성지회보
기사

수리산성지 신자 글

은혜로웠던 날들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7-01 조회수 : 5

이달 초였다. 여름이지만 그리 더운 날씨도 아니었고 습도도 적당한 날이었다. 모처럼 동생이 드라이브를 가자며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도착할 시간을 예상하고 천천히 준비를 했다. 동생이 도착하기엔 이른 시간인데 전화가 왔다. 오빠의 딸인 조카의 전화였다. 아빠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119에 신고를 했고 회사에서 엄마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스치는 반갑지 않은 예감에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을 다스려가며 화사한 옷차림을 벗고 검정바지와 흰색재킷으로 갈아입었다.

잠시 후 동생이 왔고 나는 동생에게 오빠 집으로 내비를 찍으라고 했다. 가면서 상태를 말해줬다. 조카가 병원으로 옮긴다고 연락을 했다. 우리는 병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구급차 한 대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오는 거였다. 차에서 내리는 기사에게 물었다. 아직 조카들이 도착하기 전이었다. 구급차에서 오빠가 내려졌고 나와 동생은 안치실로 향하는 오빠의 침대를 뒤따라갔다. 긴 복도엔 이동침대의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들릴 뿐 매우 적막했다. 동생이 조심스럽게 오빠의 머리를 들고 그곳 직원들과 안치실침대로 옮겼다. 오빠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오빠는 십 오년쯤 전에 고관절 수술을 하여 잘 걷지를 못해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다 사, 오 년 전에 치매가 와서 외부와는 단절된 상태로 살았다. 다행히 가족들 몰래 외출을 하거나 가전도구를 마음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올케언니는 매끼 영양을 따져가며 식사를 준비를 해줬다. 병원에 가는 걸 몹시 싫어한 오빠는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에 대한 염원인 자는 듯 떠난 것이다. 81세의 생은 고통스럽게 연명하기위해 호스를 끼우고 주렁주렁 달린 의료기구를 달지 않았고 본인도 죽음에 이르는 괴로움 속에서 고생을 하지는 않은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식사를 준비한 올케언니가 오빠를 불러도 나오지 않아 방에 들어가 흔들었더니 굳어져 있었다고 했다. 

 장례를 치루는 내내 은혜로웠다. 오빠의 성품은 순하고 조용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삼일은 본인이 살았던 방식처럼 조용하고 평화롭게 머물렀다. 발인을 하며 나도 나직한 목소리로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오빠, 잘 가요.

 그 은혜로움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하느님을 따랐고 올케언니의 기도와 제일 힘이 드는 주방봉사를 하며 많은 사람에게 양식을 제공했다. 이 세상에서의 올케언니가 베풀었던 양식을 하느님은 영원한 양식으로 오빠에게 되돌려 주심을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서 생활했던 오빠는 좋은 날을 선택해 훌훌 떠난 것이다. 교회의 동산에 마련된 추모시설은 양평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오빠는 산의 정상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슬픔보다는 은혜로운 날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