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신심을 생각하는 9월입니다. 순교자들의 신심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예수님과 성모님의 삶을 본받는 것일 것입니다. 양근 성지 후원 가족 모두 순교자들처럼 예수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배우고 실천하였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 책장에서 ‘나를 좀 보아주세요’ 하고 소리치는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의 저서 ‘팡세’를 읽었습니다. 팡세라는 말은 불어로 사색 혹은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전 표면이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과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를 말한 사람입니다.
팡세는 제1부 신 없는 인간의 비참, 제2부 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파스칼’ 하면 많은 성직자들이 하느님과 천국의 존재 유, 무를 말하며 많이 이용하는 사상가입니다. 파스칼이 철학자가 되지 못하고 사상가인 이유는 그의 작품 팡세는 일종의 하느님 체험에 대한 묵상 노트이지, 세계와 사색에 대한 질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팡세를 통해 파스칼은 하느님을 직관하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심정이란 감성, 느낌이고 이것이 곧, 신앙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와 활동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 없는 활동, 활동 없는 기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한편, 기도는 결코 딥페이크 할 수 없습니다. 딥페이크란 인공지능 기술로 사진이나 영상을 조작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딥페이크 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기도는 우주의 원리인 ‘황금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순 제2주간 주일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였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입니다. 한마디로 기도를 통한 거룩한 변모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얼굴은 밝고 빛이 나며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줍니다. 그런데 20년 이상을 기도해도 얼굴이 바뀌지 않고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헛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헛기도만 하고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기도와 행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7-12)
예수님의 이 말씀을 ‘황금율’이라고 합니다. 즉 황금처럼 귀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황금율’의 핵심은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황금율’은 여러 종교의 공통 요소입니다. 이슬람교 꾸란은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다.” 유대교 탈무드는 “너에게 해로운 일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이와 더불어 불교의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남을 너 자신처럼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께 아침저녁으로 이거 해달라 혹은 저거 해달라 하며 청원 기도를 자주 합니다. 그리고 지향을 두고, 미사, 묵주기도, 9일 기도 등을 바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이루어지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잘 이루어지는 사람은 황금율을 잘 지킨 것이고, 자신의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황금율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이 말씀은 곧, 하느님이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해준 그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남의 청을 들어줄 때, 내가 남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 줄 때, 남이 문을 두드릴 때 열어준 사람만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원리인 ‘황금율’인 것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며 이 성지, 저 성지 찾아다니며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황금율’을 지키며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더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한 달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9월 순교자들과 함께.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