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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양근성지에서 온 편지 1월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01 조회수 : 4

+ 자비를 베푸소서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었으면 합니다. 저도 사제 생활 30년 차가 되는 한 해 더욱 성실하게 아름답게 살도록 마음먹어 봅니다. 

  작가, ‘체스터턴’은 말합니다. “천사는 왜 날개를 가졌는가? 그들은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은 인생을 심각하게 살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가볍게 사는 것, 이라 생각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달 너무 심각하게, 너무 엄격하게 살지 말고 부는 바람에 한없이 내리는 눈을 즐거이 맞는 것처럼 여유롭게 살았으면 합니다.   

  스페인 대 서정시인 ‘히메네스’는 말합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내게 보이지 않게 내 옆에서 걷고 있는 그 사람이다. 나는 그를 가끔 방문하며 또 가끔 망각한다. 내가 말할 때면 그는 조용히 침묵한다. 내가 미워할 때면 그는 온화하게 용서한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닐 때 그는 우회로로 간다.” 그는 누구 일까요? 그는 바로 내면의 안내자 ‘수호천사’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안내자를 자주 찾고, 자주 만날 때 우리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 안에 있는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수호천사와 자주 교류하기 위해 내면의 침묵은 필수입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음에도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사람들은 공정, 상식, 평등을 외치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정의를 대놓고 말씀하신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자비,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30-37)

  위의 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착한 사람의 비유입니다. 착한 사람은 상처 입고 아파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아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인 유럽과 미국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어서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아니면 아파하고 상처 입은 사람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마리안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들은 도와 주고 싶어도 교회 공무원 신분으로 율법을 어기는 일을 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을 칭찬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의로 대변되는 옳음과 법과 질서가 아닌 좋음, 즉, 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정의가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하는 갈등의 상황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랑을 선택하십니다. 사랑은 모든 법과 질서 그리고 정의를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비란 무엇일까요? (우스갯 소리지만 자비란 자기 스스로 내는 돈입니다. ㅎㅎ)

  많은 사람들이 자선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마리아인처럼 자기 돈을 들여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자비란 자기 돈을 들여 자선을 베푸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2026년 새해를 시작하는 1월 이웃들과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더욱 따뜻한 겨울이 될 것입니다. 



2026년 1월 자비를 베풀며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