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뜻하는 그리스 말은 ‘메타노이아’입니다. ‘메타’는 ‘반’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을 넘어선다’는 뜻도 있습니다. ‘메타노이아’는 또 ‘메타노에오’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메타노에오’는 ‘스스로 생각하다, 뉘우치다, 되돌아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타노이아’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내가 생각하는 그 무엇을 넘어선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지닌 회개는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모습으로 변화됨’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반성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머리로만 반성하고 변화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회개했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마르코 복음 3장 28-29절의 말씀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증언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떤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나의 죄보다 하느님의 자비가 더 크심을 기억하며, 내가 당신께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면 기꺼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마중 나오실텐데, 도대체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 무엇이기에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실까?
사제는 고해성사 마지막에 사죄경을 읊습니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 당신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써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셨으니…”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용서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는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일이야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은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만으로 회개하기는 참으로 어려움을 숱하게 체험합니다. 그러하기에 회개를 위해 성령의 도움이 꼭 필요함을 되새기게 됩니다. 회개는 하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성령의 도우심을 더 많이 청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