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 합니다.
봄의 전령이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따뜻한 봄날,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볍게 산책도 하시고 따뜻한 커피 한 모금과 마음의 빗장을 녹이는 음악도 들으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교수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읽은 책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대해 논하면서 공리주의,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이클 샌델은 위 두 이론이 정의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칸트의 ‘정언 명령’을 말하면서 올바른 정의는, 도덕과 함께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도덕을 잃어버린 정의는 모든 것을 숫자로 자기 취향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덕과 함께하는 정의는 나와 타인을 모두 존중하는 정의입니다. 물론 ‘정의’라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자기 수양을 멀리하고 자기 이익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물론 자기 이익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예언자 특히 이사야, 아모스는 정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이 살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정의인 것이 한 사람에게는 불의한 것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저녁 다섯 시에 고용한 일꾼에게 모두 똑같은 임금을 줍니다. 왜일까요? 정의의 원칙에서 보면 매우 불공평한 면이 있지만 도덕과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루 품삯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도밭 주인의 처사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필요한 양식을 시간과 관계없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능력입니다. 이는 일반 직장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사에서는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포도밭 주인은 나름대로의 정의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정의, 공정, 평등을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도 이스라엘을 결코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 2026년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도덕과 사랑에 기초한 정의는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정의니, 도덕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똑똑하고, 깨어있는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면 정치권에 기대어 시위에 나설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도덕과 사랑을 함양하여 바른길로 나갔으면 합니다.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들도 자기 역할을 하고 자기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의로운 마음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인간, 사랑하는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말하기 전에 먼저 도덕을 수양하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챙겼으면 합니다.
도덕과 정의는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마음가짐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모두 하나로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