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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파우스트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9-01 조회수 : 7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9월 인사 올립니다. 아직도 더운 여름입니다. 아무쪼록 몸 건강 마음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요즈음 성지 주변이 온통 공사판입니다. 양강섬 출렁다리 공사로 오고 가는 사람과 공사 소음이 범벅이 되어 정신이 없습니다. 하루빨리 공사가 끝나길 바라며, 공사 이후 양강섬 순교지를 자유롭게 오갈 날을 기대해 봅니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20대 청년 때부터 80대 노인이 되어 죽기 직전까지 60여년에 걸쳐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파우스트의 시작은 구약성서 욥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서에 따르면 욥은 하느님 보시기에 땅 위에서 가장 선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그런 욥을 꾀어내 타락시킴으로써 하늘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싶어 하느님과 내기를 합니다 파우스트는 이 구조를 차용했습니다. 악마인 ‘메피스토텔레스’ 역시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두고 하느님과 내기를 합니다. 만약 유혹에 성공하면 승자는 악마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이 승리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지적 열망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난제 앞에 갈증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지적 만족의 결핍은 결국 거대한 욕망이 되어 파우스트를 집어삼킵니다. 그런 그에게 메피스토펠레스가 사람에게 친숙한 개로 변하여 접근합니다. 그리고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습니다. 계약의 핵심 내용은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하인이자 조수가 되어 파우스트의 어떤 욕망이든 실현 시키도록 돕는 것입니다. 단 파우스트가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그때 두 인물의 주종 관계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파우스트는 지적 허기로 악마와 계약을 맺지만 그가 채우려 했던 것은 사실 이전에는 드러내지 못하고 누르고 있던 욕망의 실현이었습니다. 경험의 확장이라는 이름하에 그는 철저히 욕망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우선 젊음을 취했고 의도했건 아니건 누군가의 권리와 생명을 취했습니다. 그 예로, 그렌트헨과 고대 미인 헬레나를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도 여럿 죽입니다. 그가 택한 삶은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히 주변 사람들을 도구화하는 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 마저도 그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끝내 구원을 받습니다. 마지막에 성모님 품에 안깁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관절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라는 저항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옵니다. 오직 자신의 욕망에 좌우되는 존재에게 허락되는 구원이라니, 아연해 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괴테의 특별함입니다. 만약 하느님이 모든 결정의 때에 인간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면 그런 존재를 우리는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 하느님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동의나 이해 여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초월적 위상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지탱하는 힘인, 비 의성과 절대성입니다. 다시 말해 파우스트의 구원 여부는 오직 하느님의 영역이요, 주권인 것입니다. 

  다만 괴테는 여기서도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갑니다. 다시 이야기 속으로 돌아갑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 핵심은 만족입니다. 그런데 멈춤을 모르고 달리는 파우스트 속 욕망의 열차가 정지한 것은, 수많은 욕망을 실현하고 소비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물리적으로 시력을 잃고 나서야 만족이 다가왔습니다. 그의 눈을 채우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파우스트는 마음의 눈, 곧 심안이 열립니다. 

  파우스트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결국 눈이 멀고 맙니다. 물리적 시력을 잃고 나자 파우스트는 비로소 마음의 눈을 뜹니다. 그제야 오래 미루었던, 메피스토펠레스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을 내뱉습니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이는 오늘날 현대인이 직면하는 도파민의 홍수를 연상케 합니다. 끝없는 자극과 소비에 눈먼 우리네 삶의 태도에 경종을 울립니다. 욕망 그리고 자신의 지향에 따른 추구와 방황도 격려하지만, 반드시 고요한 가운데 내면의 질서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괴테가 독자들에게 격려와 함께 경고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괴테는 말합니다. “좌절하지 말고 기꺼이 방황하라 방황은 길을 잃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 길을 찾고 있음을 의미할지니” 

  순교자 성월입니다. 하늘에 계신 수많은 순교자들도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들처럼 무수히 방황하고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순교자들은 끝내 길을 찾고 순교합니다. 그 길은 우리 내면에 있고 그 길의 최종 목적은 하느님 이라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안에서 모든 방황을 끝냅시다.

2026년 9월 하느님과 함께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