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뭔가를 선택해야 된다. 밥을 먹을 것인가, 빵을 먹을 것인지를 시작으로 잠들 때까지 매순간 선택하는 삶이 이어진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들은 생사와 별 관련이 없어도 고민하게 된다. 가볍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 다행이다.
지난 주, 일주일 내내 푹 빠져 있었던 것이 있다. 미국에서 제작된 정치, 권력에 관한 시리즈인데 많은 분량이었지만 결국 사람의 내면을 드러낸 내용이라 멈출 수 없었다. 매 순간 자신을 위해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고 자신의 선택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이지만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시리즈를 보면서 세상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은 하느님뿐임을 느꼈다. 자신을 육화시켜 예수님을 세상으로 내보내시고 고난의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희생을 감내하셨다. 하느님을 믿는 다고 박해를 하는 것도 모자라 신자들을 잡아 가두며 일일이 배교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배교를 선택하면 살 수 있고 하느님을 선택하면 죽음이었다. 얼마나 잔인한 선택인가.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면서 선택하는 것이 흔하지 않지만 그마저도 피하는 길을 집요하게 찾으려 할 것이다. 박해시대의 신자들이 선택한 쪽은 죽음을 넘어선 하느님이었고 순교였다. 그 당시 박해를 했던 권력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그깟, 하느님이 뭐라고 목숨까지 버릴까,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순교의 희생과 빛은 지금까지 신앙을 이어오게 만들었다.
냉전과 전쟁, 이념의 충돌을 거쳐 과학과 문명을 발달로 미래학적인 가상시나리오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23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과학에 서서히 빼앗기고 있어 기계화된 삶이 되지 않을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자연에 의한 기후변화가 자연재해를 일으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자연이 분노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현대의 순교는 어떤 것일까. 각종 거짓은 진실처럼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들고 있다. 거짓에 휘말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을 수도 있다. 언젠가는 신앙자체를 옛날에 있었던 에피소드쯤으로 여기지는 않을까.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며 굳건하게 다지는 것이 현대인의 순교일 것이다. 거짓에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은 가르침을 증거 하는 삶이어야한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해 빌어 주소서.
- 순교자성월 기도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