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은 또 다른 사형에 불과,
사형의 대체 형벌은 ‘상대적 종신형’이 되어야
그동안 국회에 발의되고 계류하기를 반복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법안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곧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의 대체 형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사형 폐지를 향한 우리 사회의 결단이 여전히 더딘 가운데, 가석방의 가능성이 있는 ‘상대적 종신형’이 인권적 관점에서 사형제도의 바람직한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형벌의 목적인 ‘교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사회 복귀를 완전히 차단하는 일은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025. 9. 19.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 참가자들이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위원장 김선태 주교, 이하 사폐소위)가 2025년 9월 19일(금)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이 같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사형제도 폐지와 인권적 대안’을 주제로 열린 올해 세미나는 사형의 대체 형벌과 바람직한 입법 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사폐소위와 국회의원 13명이 공동 주최하였다. 좌장은 주현경 교수(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맡았다.
▲ 2025. 9. 19. 김선태 주교가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인사말에서 “지난 28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무려 열 번이나 발의된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은 단 한 번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면서 “22대 국회에서는 더욱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형제도 폐지는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을 끊어내며,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더 잘 살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며 “생명과 인권을 위한 기도와 노력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하였다.
▲ 2025. 9. 19. 민형배 국회의원이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형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구을)은 “국가가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며 이는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한 인권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였다. 민 의원은 “형벌의 목적을 지키면서도 사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상대적 종신형이 사형의 대체 형벌로 바람직하다.”면서 “오늘의 논의가 내일의 입법으로 이어지도록 국회에서 앞장서겠다.”라고 말하였다.
▲ 2025. 9. 19.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이덕인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발제자로 나선 이덕인 교수(부산과학기술대학교 경찰행정과)는 절대적 종신형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부분에서 헌법 위반의 결함이 있고, 사회 복귀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사형의 대체 형벌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교수는 “형벌을 집행할 때는 일반 예방(범죄 예방)과 특별 예방(교화)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절대적 종신형은 교화를 통한 재사회화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형’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현행 무기형 제도에 대한 오해도 바로잡았다. ▲무기수형자가 일정 기간 복역하면 자동으로 가석방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인식과 달리, 심사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으며 스스로 심사를 요청할 수 없다는 점 ▲2024년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전체 가석방자 9,525명 중 무기수형자는 12명(0.9%)에 불과하여 ‘무기수형자가 많이 가석방된다’는 인식도 사실과 다르다는 점 ▲가석방된 무기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이 크다는 단정적인 우려도 검증된 바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짚었다.
▲ 2025. 9. 19.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이덕인 교수가 질문을 듣고 있다.
바람직한 입법 방향도 논의되었다. 이 교수는 상대적 종신형 도입 시 최소 복역 기간 설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기간을 무리하게 높게 설정하지 않고, 평균 기대수명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무기형의 최소 복역 기간을 30년으로 설정하고, 유기형의 상한을 20년으로 조정(현재는 30년)한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교수는 가석방 심사를 법원이 맡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하였다. 무기형 집행을 행정처분으로 결정하기보다 사법 심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면서 “가석방이 되더라도 10년간 보호관찰을 하고,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등 국가의 관찰과 감독이 철저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부연하였다.
▲ 2025. 9. 19.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김대근 박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토론에서는 상대적 종신형이 사형제도 폐지의 대안이라는 데 힘을 보태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김대근 박사(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는 상대적 종신형은 교정 이념에 충실하며, 최소 복역 기간 전에는 가석방이 일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행 무기징역형보다 중형이고 법감정에도 부합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다만 “가석방은 ‘갱생한 수형자에 대한 무용한 구금을 피하고, 수형자의 자기 형성을 촉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취해지는 행정처분’이므로, 이를 교정 당국이 아닌 법원이 심사하도록 하는 방안은 현 가석방 제도의 취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 2025. 9. 19.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중대한 범죄에 관한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사형제도를 유지하여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홍성수 교수(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는 범죄 예방을 위하여 강도 높은 형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홍 교수는 “범죄학 연구에 따르면 중대성(형벌의 강도)보다 확실성(범죄에 대하여 처벌이 가해질 확률)이 범죄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였다. 또 형벌의 목적인 교화 부분에 있어서도 “수감자들은 가석방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교정 프로그램에 협조적이고 문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라고 밝혔다.
오승진 교수(단국대학교 법과대학 학장)는 “사형에 처할 만한 범죄를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려면 무기징역과 유기징역 사이의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면서 “현재 유기형의 상한선을 낮추고, 무기징역의 가석방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최새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헌법 재판소도 절대적 종신형의 위헌성 소지를 표명하였고, 국회에서도 이 위헌성을 알고 있으나 상대적 종신형에 관한 법안이 한 번도 발의되지 않은 상황은 모순적”이라고 꼬집었다.
▲ 2025. 9. 19. 2025년 사형제도 폐지 연례 세미나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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