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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제27회 한일주교교류모임 미사, 의장 주교 강론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19 조회수 : 39

제27회 한일주교교류모임 미사

[2025년 11월 19일<연중 33주간 수요일>, 히로시마 간온마치 성당]

 


사랑하는 형제 주교님들, 하느님의 크신 축복 안에서 제27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이 은혜롭게 잘 진행되고 있음에 깊은 기쁨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이번 만남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고 저희를 따뜻이 환대하여 주신 히로시마 교구장 시라하마 미쓰루 주교님과 준비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히로시마는 평화의 가치를 몸으로 기억하는 도시입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지만, 그 고통을 품은 채 세상의 평화를 증언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8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바로 이곳 히로시마에서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이 함께 기도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고 감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19,1-10)에서 우리는 ‘미나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한 미나씩을 맡기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고 명합니다. 어떤 종은 열 미나를, 또 어떤 종은 다섯 미나를 남겼지만, 한 종은 그것을 그대로 싸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냉혹한 사람이라 두려웠다’고 변명했지만, 결국 그에게 있던 한 미나 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 비유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은총을 단순히 보관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은총을 사용하고, 나누며, 더욱 풍성하게 키워 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문득 이런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배는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정박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합니다. 항구에 머무는 배는 결코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리고 한일 양국의 주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과거 아픔의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멈춰 서 있지 않고, 함께 항해를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항구에 머무는 평화가 아니라, 미래의 바다로 나아가는 용기의 평화입니다.


우리 한일 주교들의 교류 모임은 바로 그 복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온 ‘용기 있는 항해’라 할 수 있습니다. 1996년,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여전히 냉랭하던 시절, 한국의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 박석희 이냐시오 주교님과 일본의 하마오 후미오 추기경님, 오카다 다케오 대주교님께서 ‘이제는 만나야 한다’는 믿음으로 첫 발걸음을 함께 내딛으셨습니다. 그 만남은 단순하고 의례적인 외교 행사가 아니라, 복음적 용기이자 화해를 향한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모임의 주제는 역사 문제를 넘어 선교, 생명, 환경, 청년 사목 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일본 주교님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셨으며, 한국 여러 교구의 사제들은 일본으로 파견되어 사목하며 화해의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한 미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살아 있는 복음의 결실로 키워낸 결과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국 주교님들의 우정은 깊어졌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키워온 ‘친교와 일치의 여정’이라는 귀한 미나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번 모임의 주제처럼 젊은 세대를 위하여 평화의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교류를 이어가는 이유는 단지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화해와 평화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함입니다.


그 다리는 형식적인 선언이나 문서로 건설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교류, 실천과 나눔을 통해 조금씩 그러나 굳건히 세워져야 합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평화의 정신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성령 안에서 함께 기도하며, 평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양국 주교님들께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바람을 담아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님의 뜻 안에서 서로 이해하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고 저희의 교류가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씨앗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25년 11월 19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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