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2026년 춘계 정기총회
주한 교황대사 말씀
(2026년 3월 10일)
친애하는 형제 주교님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친교의 시간을 나누는 것은 제게 언제나 기쁨입니다. 이번 춘계 정기총회의 장엄 개회에 저를 초대해 주시고, 여러분과 잠시나마 소회를 나눌 기회를 주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총회를 준비하시느라 애써 주신 주교회의 사무총장 이철수 스테파노 신부님과 주교회의 사무처 직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주교님 여러분, 다시 한번 형제애의 마음을 담아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전합니다. 한국 교회의 여정에 동반하며 보여 주신 여러분의 아낌없는 열정과 충실한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한국 교회는 신앙의 힘을 바탕으로, 형제들을 위한 구체적인 봉사로 사랑을 증거하며 한 걸음씩 꿋꿋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정기총회를 맞아 레오 14세 교황님께서 보내 주신 메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와 영적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인도하시는 길을 함께 찾고자, 이 자리에 모여 공동 식별의 자세로 봉사하시는 여러분의 헌신에 큰 존경과 격려를 보내시며, 한국 교회를 위해 언제나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 주셨습니다.
교회 생활 안에서 최근 일들에 대하여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지난 추계 정기총회가 그리 오래전은 아니었으나, 그사이 교회 안팎으로 중요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는 최근 수원교구 보좌주교로 서품되신 곽진상 제르마노 주교님께서 처음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주교님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친교의 살아 있는 다리가 되어 주시도록, 주님께서 지혜와 내면의 힘, 그리고 사목에 꼭 필요한 식별의 은총을 풍성히 내려 주시기를 청하며 다시 한번 주교님을 위한 기도를 약속드립니다.
아울러, 삶의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을 기도 중에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그들의 어두운 밤에 부활의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최근 몇 달은 교회와 더불어 인류 가족 전체에게도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레오 교황님의 첫 해외 사도 순방은 외교적, 영적으로도 진정한 ‘불의 세례’와 같았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교회 일치 대화를 위해 튀르키예를,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를 위해 레바논을 방문하셨습니다. 이로써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향후 행보를 이끌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신 셈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일치,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대화, 그리고 세계의 지정학적 변방에 있는 이들과의 동행입니다. 나아가 지난 1월, 교황의 통치 행위를 보필하고 ‘함께 걷고 식별하는’ ‘도구’로서 소집된 특별 추기경 회의는, 교황님께서 친히 밝히셨듯이 이제 교황직의 정례적인 관행이 되어 레오 14세 교황직의 특징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희년 이후의 교회 여정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표어 아래 우리 모두를 새로워지게 한 2025년 희년이 최근 교황님에 의해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레오 교황님께서 복음의 빛으로 일깨워 주셨듯이, 희년은 문을 닫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여정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전히 순례하는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꺼지지 않는 빛을 받으며 신앙을 굳건한 토대로, 희망을 길잡이로 삼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어갑니다.
희망의 희년은 끝났지만, 교회는 다시 일상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여정은, 그리스도 중심의 겸손한 사목 양식을 구현하시며, 힘의 논리와 공격적인 언사를 ‘무장 해제하시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늘 귀를 기울이시는 레오 교황님과 함께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 담화에서도 레오 교황님의 재위 내내 일관되게 이어져 온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사목 방향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곧, 우리가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신앙의 힘을 되찾자는 초대입니다. 더불어, 경청에 앞서 말 한마디로 상처를 입히는 이 시대에, 서로에게 평화롭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작은 변화가 세상에 평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희망도 담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단지 ‘무기를 내려놓고 무기를 내려놓게 하자.’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에서도 ‘무기를 내려놓은,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몸짓과 말, 마음가짐까지 요청하십니다.
평화, 희망 그리고 도전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비인도적인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비통한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야만이 초래한 가장 혹독한 결과는 오로지 무고한 이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됩니다. ‘가늠할 수 없는 비극’이 닥칠 위기 앞에서, 레오 교황님께서는 “폭력의 악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이를 멈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당사자들에게 촉구하시며, 대화의 길로 시급히 돌아올 것을 애끓는 심정으로 호소하셨습니다.
평화와 희망은 결코 멀리 있는 꿈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 안에 평화와 희망의 얼굴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시며, “우리의 희망”(1티모 1,1)이십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는 2026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2024년, 전 세계 군비 지출이 전년 대비 9.4% 증가하여 지난 10년간의 증가 추세를 이어가며 … 전 세계 GDP의 2.5%에 이르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청은 이런 현상을 단순한 경제나 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형제애의 정신 자체를 뿌리째 흔드는 깊은 영적, 정치적 위기의 징후로 바라봅니다.
공동선을 향한 다자주의 전망과 협력과 개발 지원 대신 군비만 끊임없이 불리는 현실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습니다. 주유엔 교황대사 겸 상임 참관인 가브리엘레 카챠 대주교님 역시 이러한 불균형이 부조리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카챠 대주교님께서는 평화를 위해 1달러가 쓰일 때마다 전쟁을 위해 2달러가 투자된다는 점을 꼬집으셨습니다. 또한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파괴에 더 많은 비용을 들이는 이 세상의 윤리적 무질서를 강하게 비판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군비 증가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필수 조건을 채우고 진정한 평화를 일구는 데 사용할 자원을 앗아가 버립니다.”
제100차 전교 주일
이제 한 달가량 남은 4월 14일이면, 비오 11세 교황님께서 1926년에 전교 주일을 제정하신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을 맞이합니다. 저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 경사스러운 날을 각별한 마음으로 기념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2026년 10월 18일에 거행될 제100차 전교 주일 담화의 주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여”로 정하셨습니다. 특히 이 담화의 앞부분은, 교황님의 사목 표어인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In illo uno unum)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교회의 선교적 쇄신에 대한 교황님의 전망이 이 담화에 담겨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만민 선교’(Ad Gentes) 복음화 사업에 아낌없이 헌신하며 선교의 보편성을 몸소 보여 준 한국 교회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진정한 가톨릭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자기 구성원과 똑같이 돌보는”(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Ad Gentes], 37항) 모습에서 그 정신이 드러납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의 선교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한국인 형제자매 여러분께도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주교회의 통계에 따르면, 약 990명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해외 선교 사도직에 직접 헌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교님들께서 ‘만민 선교’ 현장에 파견된 사제들을 방문하신 후, 그들의 사도직이 맺은 풍성한 열매를 직접 목격하고 말씀을 전해 주실 때마다 저는 큰 위로와 기쁨을 받습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도 지난 10월 영상 메시지에서 페루에서의 선교 경험을 떠올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페루에서 선교 사제이자 주교로 봉사할 때, 전교 주일에 보여 준 믿음과 기도, 나눔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변화시키는지 직접 목격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선교하는 교회
형제 주교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만민 선교’에 동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개별 교회들이 “선교지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복음이 말하는 ‘땅 끝’은 멀리 떨어진 나라들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곳곳에도 있습니다. 주변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아무리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최근 들어 더 극명해진 빈곤과 여러 사회적 곤경이 눈에 띕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이러한 현실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묵묵히 수고하는 그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레오 교황님께서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빈곤 문제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12항).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시노달리타스”
이번 총회에는 특별히 한국 교회가 미래를 향해 단호한 마음과 새로운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노드 여정을 이행하는 방안도 중요한 의제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시노드 여정은 유례없는 ‘분화된 공동 책임성이라는 커다란 작업 현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가장 까다로운 과정이 시작됩니다. 바로 교구와 본당, 사목 평의회, 수도 공동체 등 각 현장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시노드 과정은 끝났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시노드 방식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셈입니다. 주교님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여러분의 교구 공동체가 시노드 교회로 아름답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앞길을 지원하는 방법과 구조를 찾아내는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여러분에게 있습니다(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9항 참조). 그동안 시노달리타스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레오 교황님의 말씀과 행동은 시노달리타스라는 주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지난 1월 특별 추기경 회의 때 교황님께서는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열렸던 세계주교시노드 총회의 ‘시노드적 역동성’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서로 경청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구하며, 함께 걸어가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이어서 “시노달리타스 여정은 우리 모두가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선교를 위한 친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22일 교황청 부서들에게 하신 연설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시면서, “교회 생활에서 선교와 친교라는 두 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새기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교황님께서는 “세례에 따른 공동 책임의 정신으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선교 사명에 협력하도록 부름받았다.”라고 재확인하셨습니다. 결국 교회는 친교와 참여, 선교 사명이라는 세 축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간 대화: 「우리 시대」 60주년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2025년 10월 28일 ‘희망 안에서 함께 걷기’를 주제로 열린 만남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 60주년을 기념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세계 종교 지도자들과 대표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지난 시간 동안 함께 걸어온 여정을,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는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60년 전 가톨릭 교회는 「우리 시대」 선언을 통해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형제애를 향한 용기 있는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아울러, 교황청 종교간대화부가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함께 준비하여 8월 초 한국에서 제1회 ‘유교-그리스도교 학회’가 마련된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만남은 다른 종교와 대화하려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굳은 의지와 헌신을 보여 주는 뜻깊은 징표입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이제 세계청년대회라는 중요한 대회가 17개월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한 영적 지원을, 특히 묵주 기도를 함께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아울러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시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LOC)와 여러 지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분들은 날마다 서로 믿고 협력하며,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님께서는 지난달 열린 평신도가정생명부 총회 개회사에서, 지난 40년 동안 세계청년대회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세계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종교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삶과 관계를 완전히 바꾼 ‘디지털 혁명’이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어 패럴 추기경님께서는 분명한 식별 기준도 말씀하셨는데, 이 세계청년대회의 진짜 목적은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이 행사들이 복음화 관점에서 얼마나 유효한가’라는 점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다시 말해,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은총을 전하며, 그들의 삶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길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이 대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참된 체험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패럴 추기경님께서는 세계청년대회가 지역 교회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신앙 공동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강렬한 순간’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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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여러분, 저는 한국 주교님들, 그리고 주교님들의 사목적 돌봄에 맡겨진 하느님 백성을 위해 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풍요로운 영적·문화적 유산과, 여러분과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을 잘 알고 있기에, 저는 한국 교회가 영적 쇄신을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주한 교황대사
+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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