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님을 기리며
- 유수일 주교님 고별식 추도사 -
맑은 하늘 5월 성모 성월의 끝자락, 주님 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님을 우리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보내 드리는 엄숙한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의 원로이시며, 주님의 충실한 목자이며 또한 동료이자 벗인 유 주교님을 떠나보내는 것은 우리에게 큰 슬픔이지만, 주교님께서는 이제 세상의 모든 근심과 고뇌, 육체적 고통을 다 내려놓고, 승천하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기에, 천상에서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며 주교님을 기쁘게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유 주교님의 삶과 신앙은 한 마디로 ‘뒤늦게 주님을 만났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속 신앙을 믿는 집안에서 나고 성장한 주교님은 개신교의 한 선교회에서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당시 친구의 소개로 찾은 개신교 선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접하게 되었고, 탐구심이 유달리 깊은 주교님은 그 뒤로 여러 서적 등을 읽으며 주님을 알아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전을 단숨에 읽기에 이르렀고,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하여 하느님의 신비와 섭리에 빠져들게 됩니다.
유 주교님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였지만, 주님을 향한 관심은 점점 커져 갔습니다. 어느 날 작은형제회 수도회에서 천주교 미사의 거룩함과 성스러움을 접한 주교님은 작은형제회에 입회하고자 하는 열망을 키우며 천주교 교리를 익히고, 결국 다니던 전도유망한 회사를 그만두고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합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수도회에 입회하고, 신앙생활 기간 또한 길지 않았지만, 1979년 종신서원을 한 이듬해 사제로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후 여러 곳에서 본당 사목 활동을 하고, 수도자 신학원장,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과 로마 본부 총평의원을 지낸 뒤, 2010년 한국 군종교구장으로 피명되어 주교품을 받으셨습니다.
제3대 군종교구장을 지내시며 유 주교님께서는 무엇보다도 ‘군 복음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군 사목에 헌신하셨습니다. 전국의 육해공군 군 장병과 그 가족들을 사목해야 하기에 매우 분주하게 지내셨습니다. 전국을 다니시며 수행한 주교님의 사목적 열정과 행보는 가히 초인적이었습니다. 유 주교님은 국내외 군 사목 활성화를 위해 어디든 달려가시며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격려하고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또한 유 주교님께서는 군종교구장 재임 중에 새로 건립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성당’에 대한 애정이 무척 컸습니다. 2019년 8월,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주님의 집을 봉헌하며 주교님께서는 JSA 성당이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성당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 곳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유 주교님의 사제 수품 성구는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시편 42,2)이고, 주교 사목 표어는 “끊임없이 기도하며”(1테살 5,17)입니다. 2021년 2월 군종교구장에서 물러나신 후 유 주교님은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시고, 주교님의 사제 수품 성구와 주교 사목 표어처럼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본연의 프란치스칸적 삶을 사셨습니다.
주교님, 이제 지상의 순례자인 저희들을 위하여, 또한 주교님께서 생전에 바라셨던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한국 천주교회와 저희 모두는 주교님께서 그동안 보여 주신 겸손과 따뜻한 사랑을 고이 간직하며 길이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벽을 허물고 승천하시어 저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겠습니다. 주교님 그동안 저희들과 함께해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2025년 5월 3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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