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순교자의 언덕 터 축복식·기공식…2027년 3월 완공 목표
땅속으로 200m 걸어가는 참회-순종-평화의 길 추진

성모님께 봉헌된 최초의 순교지이자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는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에 순교를 기억하는 장소를 넘어 순교를 체험하고 성찰하는 ‘순교자의 언덕’이 조성된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던 순교지다. 남양은 조선시대 사법권을 부여받은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남양 지역뿐만 아니라 많은 인근의 신자까지도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했다. 「치명일기」와 「병인 순교자 증언록」에 따르면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스가 남양에서 순교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신학생 중 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경기도 남양 출신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남양은 1983년부터 순교성지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1991년 10월 7일에는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며 한국교회 최초의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됐다. 순교지 위에 세워진 성모성지라는 점에서 남양성모성지는 순교자들의 신앙과 희생 위에 세워진 기도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성지 안에는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현양할 수 있는 시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묵주기도의 길과 기도 공간을 조성하며 성모 신심을 위한 성지로 가꾸는 데 힘써 왔지만, 정작 순교자들을 기릴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다.
성지 전담 이상각(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순교자들의 묵주기도 소리가 배어 있는 이곳에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현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2021년 승효상 건축가를 만나면서 ‘순교자의 언덕’ 건설 계획을 구체화하게 됐다.
이상각 신부는 “은퇴하기 전에 오직 이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순교자들께 바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 공간 안에 남양의 부부 순교자와 한국 최초의 신학생 가운데 한 분인 최방제 신학생을 기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지 5단 묵주기도의 길 인근에 조성되는 순교자의 언덕은 땅속으로 200여 미터 걸어가며 빛과 어둠의 공간에서 자신의 순교와 죽음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순교자의 언덕이 시작되는 참회의 길 안에는 3개의 기도소와 쉼터가 조성되며 순종의 길 끝에는 기념묘역이, 평화의 길 끝에는 예배소가 세워진다.
승효상 건축가는 “세상의 삶을 참회하고 순종의 길을 걸은 다음 얻는 평화, 이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완전한 항복에서 비롯된다”며 “이 프로젝트는 이름 모르는 옛 순교자를 기념하기도 하지만, 이 장소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며 순교하고 다시 태어나기로 결단하는 우리 스스로를 기념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각 신부는 “성지 안에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현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승효상 건축가와 공사비를 기부해 주신 분을 만나 이렇게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돼 기쁜 마음”이라며 “순교를 무덤이나 조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으로 경험하면서 우리 각자의 신앙이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순교자의 언덕 축복식과 기공식은 3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현지에서 교구장 대리 곽진상(제르마노) 주교 주례로 열렸다. 성지는 2027년 3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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