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성가정을 찾아서-3대 살며 웃음꽃 피우는 조명구-문용자씨 가정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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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련에 냉담 풀고 참회하며 본당활동 열심 큰 딸 수도회에 봉헌도

늦은 저녁 찾아간 조명구(요셉, 68, 동수원본당)씨 가정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가 한 가족이라 했다. 부인 문용자(데레사, 60)씨는 이렇게 한 자리에 가족들 모두 모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시종일관 웃음 지었다.
딸 하나, 아들 셋으로 여섯 명이던 가족이 큰 아들 인철(베드로, 34)씨의 결혼으로 며느리 박정은(플로라, 29)씨와 손녀딸 혜연(안나, 3)양 등 두 명 늘었다. 인철씨 부부는 본당 청년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만났다. 처음에는 분가를 시켰으나 며느리에게 가풍을 익히게 하고, 손녀딸 재롱도 보고 싶어 다시 불러들였다. 며느리 박씨는 “처음에는 대가족으로 사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많았는데, 막상 지내고 보니 따뜻하고 정이 오고가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1959년도에 세례를 받은 조씨는 신앙의 뒤안길을 돌고 돌아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당시 수원지역은 북수동본당 한 곳에만 교리반을 개설, 엄격한 교육을 통해 세례성사를 줬다. 조씨는 어렵게 하느님의 자녀가 됐지만 천주교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문씨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레 신앙과 멀어졌다. 안타까웠지만 조씨도 방황하던 시절이라 하느님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 부부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조씨의 수입이 줄어 어린 자녀들의 배를 곯리는 일이 잦아진 것.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문씨는 문득 성당에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8년 세례를 받고 혼배성사를 통해 조당을 해소하고 나니 속상한 마음부터 풀렸다. 그저 마음 편해지는 것이 좋아 세 아이를 업고 이고 걸리며 추운 겨울에도 꾸준히 성당에 나갔다. 그러다보니 조씨가 다시 취직이 됐고 가정형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신앙을 가지면서 조씨도 10여 년의 냉담을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고해성사를 위한 성찰을 시작했다. 밤낮으로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써 내려간 글이 노트로 몇 권이나 됐다. 조씨는 “예전 지은 죄를 생각하면 잠도 못잘 지경이었지만, 고백 후에는 큰 해방감을 느꼈다”고 회상하며 “그간 못받은 은총을 한꺼번에 다 받는 것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이후 조씨는 평신도 회장, 꾸리아 단장 등 본당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조씨 부부는 얼마 전 큰 딸 성화(마리아, 36)씨를 하느님께 봉헌했다. 사회생활을 11년 동안 해오던 성화씨가 지난 2월 카르투시오 수도회에 입회한 것. 서운했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현철(바오로, 32)씨는 “우리 집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늘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첫 번째 기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이 오죽하면 대학에 떨어져도 좋으니 주일미사는 거르지 말라셨을까”며 거드는 막내 남욱(사비노, 29)씨의 투정 섞인 말에 온 가족이 웃음꽃을 피웠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자체가 은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희 기자 bsng@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