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라는 표찰을 달고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세례를 2주 앞둔 권선동본당의 예비신자들이 성지순례를 가는 날. 가는 동안 예비신자들이 돌아가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열심히 하고 있는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묵주를 돌리며 창밖을 보며 이내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미리내성지에 도착하여 곧바로 시작된 십자가의 길 기도. 한 자매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는 예비자들의 모습 속에서 습관적으로 성의 없게 조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놀라 자세를 바로 잡는다.
이어 경당참배를 마치고 103위 시성 기념 성전 소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되었다. 성체를 모시러 나가는 나를 부러움에 바라보는 예비신자들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 때의 나를 떠올린다. 당당하게 성체를 모시는 선배 신자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부러워했었던가. 성체를 넘기는 목안이 화끈거림을 느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성체를 모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식사 후 무명 순교자 묘지를 참배하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김수환 추기경 묘소로 갔다. 1주기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한 그 곳에 많은 교우들이 보이는 가운데, 예비자들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곳에 직접 올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진지하게 함께 연도를 바치고 돌아오는데 예비자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천국으로 가는 우체통에 넣기 위한 ‘추기경님께 드리는 기도문’이다. 그들의 순수한 기도는 분명 하늘에 닿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어진 예비신자들의 진솔한 고백들. “교리 시작했을 때의 간절함이 옅어지기 시작 했는데, 오늘 성지순례를 통해 하느님이 나를 선택 하셨다는 확신을 가져 당당히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느끼면서 앞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15년 전에는 미리내성지로 데이트를 하러 왔었는데, 신자가 되기로 하고 방문하니 너무 감격스럽네요.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싶습니다”
뜨거운 신앙이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 하나하나는 나에게 다시 처음처럼 저렇게 뜨거워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조정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