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분당성마태오성당 성극'침묵' 공연
작성자 : 이송분
작성일 : 2011-04-11
조회수 : 792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던지게 되는 질문이 있다. “고통의 순간에 신은 어디 있는가? 시련이 왔을 때 왜 하느님은 침묵하고 계시는가?” 분당성마태오성당(주임 이근덕 헨리코)에서는 지난 5일 이 질문을 진지하고 생동감 있게 다룬 모노드라마 ‘침묵’이 공연됐다.
내용은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조선에 파견됐다가 붙잡힌 젊은 신부 로드리고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밟고 배교하면, 고문당하는 신자들을 살려주겠다는 관헌의 회유를 받는다. 그는 “그리스도라면 배교했을 것이다. 교회에 오점을 남기는 배신자가 되더라도 저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살리고 싶다면, 누구도 하지 않은 사랑의 행위를 하라”는 제안을 받고 갈등한다. 로드리고 신부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신에게 답을 구하지만 신은 계속 침묵한다. 신부는 ‘이 고통의 순간에 신은 왜 응답하지 않는가?’라는 처절한 회의를 거듭하며 신앙의 본질을 고민한다. 로드리고 신부가 예수의 성화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바치는 마지막 기도는 예수님에 대한 로드리고의 깊은 사랑과 믿음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그리스도 정신대로 사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고통을 보여준다. 마침내 성화를 밟기 위해 발을 든 순간 신부의 귀에 침묵하던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침묵’은 교회가 요구하는 모범적 신앙인이나 순교한 성인의 이야기는 아니다. 배교를 강요당하는 로드리고 신부가 짊어진 고뇌는 나약한 인간이라서 흔들리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우리들 개개인의 자화상일수 있다. 그래서 어떤 신학서적보다도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성화를 밟고 배교하라는 회유 속에서 ‘아버지 왜 침묵하십니까? 이 순간에 당신은 뭔가를 말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절규하는 로드리고 신부의 모습은 몹시 닮았다. 로드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라고.
해마다 맞이하는 사순절이다.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깊은가? 우리는 얼마나 절실히 그리스도의 자녀답게 살려 애쓰고 있는가? 스스로 치열하게 질문하고 돌아보고 있는가? 회의 하고 쓰러지는 나약한 신부의 모습에서 인간과 함께 고통 받고 신음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슴 속 깊이 새기게 하는 공연이었다.
‘침묵’은 일본 막부시대의 가톨릭 박해 사건을 소재로 하여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쓴 동명의 소설을 극단 단홍의 유승희 대표가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종교소설과 세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20세기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는 열한 살에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로, ‘침묵’은 그에게 다니자키상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송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