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토요일 이른 아침. 성남동성당 마당은 신나게 재잘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순례자’라는 말로 부르기엔 덜 여문 어린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나서기 위해 모인 것이다. 성남대리구 7개 본당 중고등부 학생들이 주인공이었다.
출발지인 은이성지에서 순례객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묻어난다. 이들에게 순례의 시작은 마치 소풍같았다. 은이 마을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 된 곳이고 사제가 되어 돌아와서 처음으로 미사를 드린 곳이다. 그리고 체포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광과 아픔이 뒤엉킨 삶도, 역사도, 어린 마음에게 아직은 봄날 바람보다 가벼운가 보다.
신덕고개의 가파른 길에 이르니 여기저기서 길 만큼이나 가파른 숨소리가 섞인다.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오가던 믿음의 길이었고, 17세의 이민식 빈첸시오가 신부님의 시신을 등에 업고 걸었던 사랑의 길을, 두 분이 땀과 눈물로 걸었던 길을, 어린 순례자들이 엷은 땀방울에 더운 숨을 섞으며 걷고 있다. 어린 순례자들을 마음으로 업고, 선생님들이 걷고 있다.
고개를 내려와 간간히 차들이 오가는 도로를 따라 147명의 식구가 한 줄로 걸었다. 도로변에 꽃들을 바라보며, 논갈이 해놓은 정갈한 풍경을 뒤로 하고, 폴짝 거리며 개울도 건너고, 한가한 웃음을 날리며 걷다보니 마을의 끝자락, 사람하나 간신히 지날만한 논두렁에 이어진 망덕고개가 나온다.
‘아, 힘들어’ ‘다리 아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 좋다’ ‘아자, 아자, 힘내자’하는 선생님들의 추임새가 마치 돌림 노래 같다. 앞의 친구가 걸으니 따라가고, 선생님한테 매달려 조금 더 가고, 돌아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어서 가고, 그러다 마침내 친구랑 손잡고 함께 걸으며, 함께 망덕고개를 넘었다.
‘자,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된다. 얘들아, 파이팅!’ 여기저기서 환호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몸은 더 굼뜨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운데, 출발 때보다 편한 표정들이다. 마지막 고개 앞까지 가는 길에서는 퀴즈도 하고 노래도 하고 제법 여유롭다. 그리고 애덕고개를 날아갈듯이 가뿐히 넘었다.
파견미사에서 성남대리구 청소년국장 이남수(요셉) 신부는 “얘들아, 너희들은 씨앗이야. 미래의 씨앗, 특히 교회의 미래란다. 오늘을 잊지 않고 기억 속에 꼭 간직하고 있으면, 언젠가 힘들고 지치고 피곤했던 추억이 의미를 갖게 될 거야. 여기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린다는 건 주님께서 너희를 특별히 사랑한다는 뜻이야. 언제나 주님이 너희를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5월, 반쯤 자란 나뭇잎같이 미숙한 어린 사람들의 순례길이었다. 어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작은 씨앗이 뿌려졌다. 손잡고 함께 걷던 친구, 손 내밀어 끌어주던 선생님, 치친 몸이 쉬었던 다정한 그늘아래 불어오던 바람, 모두가 마음의 씨앗이 되었다. 주님의 사랑이 함께한 행복한 동행이었다.
이송분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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