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3월 건축자재 컨테이너가 도착했고, 곧이어 그와 기술자 한명 그리고 주방 일을 돕겠다고 자원한 미국에 사는 내 누이동생이 함께 들어왔다. 우리 네 사람은 임시건물에 머물면서 4월 중순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사정상 9월 중순까지는 모두 귀국해야 하는 관계로 5개월 안에 공사를 대부분 끝내야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유용한 공구와 함께 자재들을 미리 재단해 왔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었지만 큰 공사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보통 30~40여 명의 일꾼들이 모여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했다.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오전 9시가 넘어 어슬렁거리며 나오는가 하면 일하다 말고 말도 없이 사라지기가 일쑤였다. 또한 세상에 급한 것이 없는 이곳 사람들은 일을 하다 말고 여기 저기 모여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참다못한 백문기 형제가 소리를 냅다 질렀다. “빨리 빨리해!”
그래서 그의 첫 번째 별명이 ‘빨리 빨리’이고 두 번째 별명은 ‘얌마’다. 생소한 공구를 가지고 해보지 않던 일을 하려니 제대로 해낼 리가 없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그가 ‘얌마, 이것도 제대로 못해’하고 말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바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캄캄한 밤이 오면 또 다른 걱정이 밀려온다.
울타리가 없이 건축자재를 여기저기 야적해 놓으니 밤손님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밤새도록 경비를 두 사람이나 세우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배터리도 떼어가고 시멘트도 몇 포씩 없어지고는 했다. 워낙 모든 것이 부족하고 궁한 이들은 이런 일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도 오르고 배신감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죽하면 그 짓을 하겠나. 그래, 나눠쓰자’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한상호 신부 (원로사목자·아프리카 잠비아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