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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최덕기 주교의 [둘 다섯 해누리] ‘여름 휴가’ 일기

작성자 : 성기화 작성일 : 2013-08-07 조회수 : 723

   휴가로 수원교구 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둘 다섯 해누리] 장애인 기거 시설에 와서 지내며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8월 4일 주일미사를 마치고 짐을 싸 휴가길에 올랐다. 산북에서 화성시 끝자락 서신면 백미리까지 제법 먼 거리였다.
   이곳은 백미리 야산 양지쪽에 다소곳이 서있는 [둘 다섯 해누리] 장애인 기거시설이다. 이 시설은 장애자 자녀들을 믿고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눈물로 호소하는 청을 받아들여 수원교구가 장애자 부모님들과 힘을 합해 지어 5년 전에 문을 연 시설이다. 이 시설은 장애인 시설 중에서도 꽤 괜찮은 시설로 꼽힌다. 수원교구는 이 시설을 지으며 이곳에서 기거하는 장애인들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여기저기 그룹홈에 흩어져 있는 장애인들도 돌아가며 이 시설을 이용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지었다.
   지금은 기관의 도움과 교우들의 후원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기관은 화성시이고, 경기도와 국가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년간 약 1억 3천만 원 정도 적자가 나기 때문에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관장 신부님이 본당들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받고 있다.
 
   시설은 ‘관리동’과 장애우들이 사는 ‘생활동’이 있고, ‘체육관과 생활 별동’이 있는데, 이 집은 장애우들 중 상태가 좋아 자립을 도와주기 위한 집으로‘ 그리고 수원, 군포, 남양 등에 있는 그룹홈 친구들이 해누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집이다. 앞을 바라보니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 승마장]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 빈센트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노인복지시설 [사강 보금자리]가 있다.
 
   현지에 도착하니 페인트 작업을 하시는 형제님들이 계셨다. 의왕시 오전동본당에서 오신 형제님들로서 휴일을 이용하여 이곳 복지시설에 와서 봉사활동을 해주시고 계신 것이었다.
 
   이곳 관장신부님이신 김상문(베드로) 신부님의 안내를 받아 내가 한 주 동안 머물 방에 갔다. [해누리]에는 손님방이 없어서, 생활 별동의 방 하나를 쓰기로 하였다. 이곳은 주위가 숲이라 매우 조용하다. 이런 곳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힐링이 될 것 같다.
 
   [둘 다섯 해누리]에는 장애우들이 80명이 살고 있으며, 이들을 돌보는 직원들은 50명이다. 직원 수가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곳 장애인들이 중증이고, 어떤 장애인은 한 직원이 하루 종일 밀착하여 전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삼교대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정 직원 수만으로 운영되다보니, 많이 버겁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중증 장애인들이라 이들 중에 자기 혼자 세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약 10명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2/3 정도는 말을 잘 못한다.
 
   이곳에 사는 장애우들 80명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으며, 10살 어린이부터 50세 연령자도 있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천사표’로서 순수 그대로이다. 그들은 관장신부님과 만나면 신부님의 볼에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그러나 때로는 악의 없이, 죄책감 없이 폭력적이 되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구를 부수기도 하고 친구들과 직원들까지도 이유 없이 때리기도 한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직원 하나가 출근을 하지 못했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장애우로부터 밀침을 당해 꼬리뼈가 상해서 출근을 못했다 한다.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다치는 직원들이 생기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장애우들은 일상생활 이외에도 주중에 이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는다. 자신들이 직접 무엇(자동차 부품 조립, 도예화분, 우체통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하고 자신들이 즐기는 프로그램(노래방, 찻집 운영 등)도 하며,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고,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며 승마장에서 말 두 마리를 타며 재활운동도 한다. 주말에는 직원들 다수가 쉬므로 프로그램이 적은 데, 주말에는 외부에서 공연팀들이 와서 장애우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장애우들은 이곳에서만 프로그램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곳을 적어내어 외부 시설을 방문하기도 한다.
 
   장애우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의료문제이다.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씩 이곳에 오셔서 진료를 보아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어 거의 모든 장애우들이 치료차, 또는 약을 타기 위하여 한 달에 한 번 꼴은 남양이나 수원에 있는 병원을 다녀온다고 한다.
 
   식당에는 직원 자매님 네 분이 일하고 계셨다. 식단을 짜서 식사를 마련해주시는데, 장애우들이 이곳의 식사에 만족한다고 한다. 장애우들이 원하는 것을 적어 내면 이를 반영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은 장애우에 맞춰서 음식준비를 해야 하는 점이다. 가령 어떤 친구는 간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든지, 씹지 않아도 되도록 음식을 갈아서 조리해야 한다.
 
   이곳은 저녁식사가 오후 5시이다. 직원들이 장애인들 식사를 도와주고 퇴근버스를 타고 함께 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산북에서도 5시 저녁식사였는데, 나와 저녁시간이 같아서 좋다.
 
   월요일 저녁식사를 한 후 ‘밥값’을 하려고 전지가위를 들고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잔디 위로도 칡넝쿨이 빼곡하고 나무를 타고도 올라가는 등 정신이 없다. 우선 내가 머무는 집 주위에 있는 칡넝쿨부터 제거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좀 무서운 것은 뱀과 벌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칡넝쿨이 4~5m 씩 뻗어있어 이를 걷기도 하고 자르기도 하였다. 그러자 금방 땀이 비 오듯 하였다. 얼마나 칡넝쿨이 많은지 1시간 반 작업을 했는데도 불과 20m 정도 밖에 진척이 안 났다. 칡넝쿨을 힘껏 잡아당기다가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어두워져 밝은 곳으로 나와 화단에 심겨진 나무들을 손질하기 시작하였다. 나무 밑동에서부터 나오는 가지들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화요일 오전에는 교구 사회복지회가 주관으로 하는 사회복지 위탁교육의 일환으로서, 수원교구 모현본당과 청덕성모승천본당 중학생들이 복지시설 체험학습을 하러 새누리를 하루 방문했다.
   방문 학생들과 장애우들이 하루 짝을 맺고, 짝을 이룬 두 사람은 항상 손을 잡고 함께 작업하며 서로간의 친분을 쌓아가며 프로그램에 임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조별로 각각 도예, 원예, 미니 체육대회 등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짝궁과 친교를 다졌다. 학생들도 그리고 장애우들도 프로그램에 푹 빠져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참 좋았다.
 
   은퇴하여 서신에 계신 김정원 몬시뇰님을 방문하였다. 몬시뇰님께서는 3년 전에 은퇴를 하시어 서신에다 직접 집을 지으시고 전원생활을 하신다. 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대지 260여 평에 건평 약 40평 집이었다. 꽃밭을 일구시고 표주박이 주렁주렁 달린 집에서 열대어를 키우시며 사시는데, 몬시뇰께서도 전원생활에 만족하고 계신 것 같았다. 밖에는 멍멍이 백구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몬시뇰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신성당에 잠시 들렸다. 전에 불법 건물로 문제가 되었던 사제관을 헐어버리고 새 사제관을 한쪽으로 몰아지음으로써 법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주차장도 넓게 쓰게 되는 이중효과를 보고 있었다. 본당이 살아가며 이렇게 하나하나 좋아지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김상문 신부님이 해누리 가까이 산책길을 가르쳐준다며 나를 바닷가로 안내하였다. 해누리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갯벌체험학습장]에 가니, 방학 중인데도 갯벌체험학습을 하려고 온 학생들이 북적였고, 이들을 갯벌까지 데려가고 또 데려오는 특수 버스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 갯벌로 나가보았다. 앞서 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갯벌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작고 그림 같은 섬들: 쪽박섬, 돌섬이 아름다웠고, 멀리에는 포승지구가 바라보였다. ‘아, 경기도에 이런 곳도 있었는가?!’ 산북성당 아이들도 갯벌체험을 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 후 김 신부님과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나갔다. 김 신부님은 나에게 이곳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부님이 이곳에 발령을 받고 왔지만, 장애우들과 함께 사는 생활에 대하여 공부한 바가 없어서 ‘장애우들을 사랑으로 대해주리라’는 일념으로 부임을 하였다 한다. 장애우들을 사랑으로 대해주려 하였으나 반응이 없는 친구, 외면하는 친구 등을 체험하며 신부님 자신이 어느 사이에 장애우들을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런 상태에서 내가 이들과 같이 살 수 있겠는가? 이런 모습으로는 비록 같이 산다하여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며 내적인 갈등을 느꼈다고 한다.
   부임하여 한 달이 될 무렵,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장애우들의 부모님이 오셔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는 자녀들을 2박 3일 동안 집으로 데려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김 신부님으로서는 장애우들의 부모님들을 처음 만나는 미사였다. 미사가 한참 진행되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거양성체를 마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어느 장애우가 제단으로 올라가서 미사 때 사제가 손 씻는 물을 쏟아버리더니, 이번에는 축성된 성혈을 집어서 신부님을 향해 쏟아버렸다고 한다. 모두가 놀랐고 신부님은 축성된 성혈이 제의와 제단에 쏟아져 내리는 황당한 지경을 당하여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한다. 신부님은 침착하게 직원들에게 명하여 수건으로 성혈을 모아 성작에 짜 넣도록 하고는, 미사에 참례한 모든 이들에게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로 샤워를 한 사람이니!” 하며 넘어갔다고 한다.
 
   신부님은 이 사건이 있은 후 주님 앞에서 곰곰이 묵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묵상이 되었다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사랑을 전하는 사제가 되었음에도 장애우들과 같이 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제를 위해 내가 또 한 번 피를 흘려 씻겨주겠다. 그러니 장애우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라.’ 이런 체험과 묵상을 한 다음부터는 김 신부님의 이곳에서의 장애우들과의 생활이 기쁜 생활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도 아침 7시에 김 신부님과 수녀님들 3분, 할아버지 8분과 이분들을 위해 주방에서 일하시는 자매님 한 분, 관리장님 한 분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시돈과 띠로 지방에 가셨을 때 어느 부인이 보여준 깊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수님께서는 이상하리만큼, 아니 무례하리만큼 이 여인에게 말도 안 하시고, 내치시며, 그녀를 ‘강아지’에 비유하는 말씀을 하셨다. 모두가 그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시험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맞는 말씀입니다”하고는 “그렇지만 강아지도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 먹지 않습니까?!”하며 예수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드러내고 예수님께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굳은 믿음에 그만 ‘무너지고’ 마신다. 예수님을 이기는 길은 ‘믿음’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극찬하시며, 그 시각으로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다.
 
   선교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약해지고 식어져 냉담자들이 되는 요즈음이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이방인 여인과 같은 굳은 믿음을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 형제. 자매들도 가질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정성껏 기도 바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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