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신부님, 남한산성순교성지 담당 신부를 맡아주시지요.”
어느 날 동창신부 부모님 장례미사를 마치고 난 뒤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님께서 나를 불러 불쑥 하신 말씀이다. 당시 남한산성순교성지뿐만이 아니라 성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게 성지담당을 하라니. 게다가 남한산성순교성지는 이제 막 성지 조성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으로 무척이나 힘들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어찌하랴, 당시 부주교님이셨던 최 주교님은 곧 교구장 주교님이 되실 분이니…. “주교님, 못하겠습니다”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그저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성은 역사적으로는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과 왕실의 피난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자들조차 이곳이 조선 후기 신해박해(1791년)에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약 300여 명이 순교한 ‘치명터’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 무렵 막상 성지 부지라고 올라가 보니 미사를 봉헌할 곳도, 찾아오는 이들도 없는데다 다른 곳으로 성지 홍보 미사를 나가도 많은 분들이 남양성모성지와 혼동을 하곤 했다. 이런 곳에 성지 개발을 하라니…. 하루하루 막막하고 답답했다.
힘든 시간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의 최고의 ‘빽’이신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고, 참수, 교수, 장타 등 온갖 방법으로 치명, 순교하신 분들의 시신이 버려졌던 시구문을 찾아가 며칠 밤이고 순교자들에게 전구를 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도의 시간 속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성지 개발은 조금씩 이루어져 갔고, 지금은 일 년 내내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주님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실까?’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들어주시고 나쁜 것은 들어 주시 않으실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한산성순교성지에서의 사목을 통해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설령 우리가 우리에게 해가 되는 일을 기도로 청한다 해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와 함께해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좋은 것을 더 좋게 해주시고 나쁜 것도 좋게 해주시는 분이시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