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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오로지 종합복지원(이사장 방구들장 대건 안드레아 신부)은 5월 28일 안성에 위치한 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마을에서 성직자·수도자·평신도 등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평화 소녀상’ 제막 및 축복식을 열었다.
조각가 김교두 씨가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동양 평화 소녀상은 높이가 180cm로 유무상통마을 본관 1층 현관에 조성됐다. 이는 한국·중국·일본 등 삼국 간에 평화 공동체를 기원하며 오로지 종합복지원 법인 산하 10개 시설의 어르신들과 돌보미들이 봉헌한 것이다.
이날 정오 현관 앞 고(故) 김남수 주교 흉상 옆에서의 큰북 연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제막식, 축하연주(미리내 밴드), 이성효 주교의 평화 소녀상 축복식, 살풀이춤, 헌시 낭송(지요하 시인), 동양 평화 소녀상 설치 취지문 낭독, 안중근 찬가 순으로 진행됐다.
제막식에서 이성효 주교를 비롯해 평택대리구장 김화태(제르바시오) 신부와 유무상통마을 방상숙(데레사) 원장 그리고 김복동·길원옥 두 할머니가 함께 막을 걷어내니 새하얀 대리석의 평화 소녀상이 드러났다.
이성효 주교는 평화 소녀상 축복식 후 인사말에서 “안중근 선조를 비롯해 애처로운 소녀들의 헌신에 힘입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무용가 장윤실 씨가 평화 소녀상 앞에서 8분의 12박자의 장단에 맞춰 나래체·발바치·돋움새 등의 사위로 살풀이춤을 펼쳤으며, 시인 지요하 씨가 ‘소녀상의 치마폭은 천년 웅비의 날개다’ 제목으로 헌시를 낭송하자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끝으로 이성효 주교를 비롯해 방구들장 신부 등 사제단은 어르신 돌보미들과 함께 평화의 소녀상 양 옆 두 개의 돌 탁자에 앉은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백숙자(요세피나·43·퇴촌본당 산북공소) 씨는 “우리 현대사 슬픔의 한 단면이 ‘평화 소녀상’에 머금어있는 듯하다”며 “그분들의 피어린 희생을 잊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는데 온 민족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성기화ㆍ이원재 명예기자
[이성효(리노) 주교, 유무상통마을 ‘동양 평화 소녀상’ 축복식 인사말]
오월 화창한 이 좋은 날씨에 어르신들과 함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거행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난 4월 20일 오후 2시 진도 팽목항에서 제가 집전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같이 미사를 봉헌했던 어르신 몇 분이, 오늘도 이 자리에 함께하신 것으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계절의 여왕 오월 성모님의 달에, 성모님을 닮은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한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주 전에 중국을 사목방문차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동안 뤼순(旅順)에 들러 우리 안중근 선조가 투옥되고 순국하신 감옥을 직접 둘러보고, 어떤 정신으로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남겨놓았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감옥생활 중 한·중·일 삼국이 서로 협력해서 동양 평화를 이뤘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뜻을 자신의 필치로 그것을 남겨놓습니다. 그 참뜻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어, 오늘 우리는 이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하면서 다시금 미래에 그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김복동 어머니와 길원옥 어머니 두 분이 함께 계십니다. “저 평화의 소녀상이 할머니 모습과 닮았습니까?”라고 여쭸더니, 김복동 어머니께서는 싱긋이 웃으셨습니다. 아마 닮기도 하고 또 안 닮은 부분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다시금 이러한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유무상통마을과 사회복지법인 오로지 종합복지원 이사장 방구들장(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사회의 없는 분들을 위해, 또 평화와 정반대편에 있는 분열, 정의에 상반되는 불의에 신부님께서 예수님 닮은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까지 빛을 비추며, 또 필요한 곳에서는 소금의 역할을 하시는 분입니다.
아무쪼록 이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사랑을 실천할 수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이 뜻 깊은 일을 해주신 오로지 종합복지원 법인 산하의 모든 부모님들과 돌보미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이 모든 분을 위해 박수를 쳐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소녀상의 치마폭은 천년 웅비의 날개다>
—동양 평화 소녀상 제막을 경축하며(지요하 시인)
나라 잃은 죄업이
가난하고 순박한 백성들의
어린 딸들에게 암운처럼 드리웠다
비록 가난의 멍에를 지고 살았지만
정조와 절개를 생명처럼 여기던
대한의 딸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왜구의 나라와 오랑캐 나라에 무수히 끌려갔던
한반도 처녀들의 한 맺힌 피눈물
그 슬픈 역사의 숱한 고갱이 속에서도
몸의 순결을 생명처럼 여겨왔던 대한의 딸들이
남의 나라를 침탈하고 인류 공멸의 전쟁을 일삼는
왜국 군대의 야욕 앞에 숨을 곳이 없었다
짐승의 이빨을 들이대고 덤비는
왜구들의 손아귀에 잡힌 가녀린 허리들이
진달래 꽃잎처럼 스러졌다
부모형제와 생이별하고
고향산천을 아득한 기억 속에 묻고
이역만리 타국의 병영에서
왜구들의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던 대한의 딸들
밤마다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아롱졌던
비탄의 눈물들
치마폭 가득 눈물방울들을 안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건만
조국은 광복을 찾은 나라가 아니었다
갖가지 형태의 어둠들이 골골마다
장막처럼 드리워져서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해방된 조국은 그들에게
왜국이나 다름없었다
해방된 조국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하염없이 세월이 흐르더니
민중의 뜨거운 자각이
역사의 봉우리들을 이루는 시절에 이르러
그들은 마침내 ‘소녀’로 환생했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그들은
평화를 지향하고 상징하는
고귀한 관을 쓰게 되었다
이름하여 평화 소녀상!
그들은 모두
안중근 장군의 딸들이다
동양 평화의 이상향을 제시하고
구체적 방안까지 펼쳐보였던
아버지 안중근 장군의 품안에서
소녀들의 꿈이 봄날의 들꽃처럼 피어난다
그리하여 오늘
민족정기의 꽃나무가 힘차게 자라나는
대한민국 유무상통마을 한복판에
아버지 안중근 장군의 뜻을 되새기는
수많은 소녀들의 얼이
천년의 웅비를 위해
힘껏 나래를 다듬는다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소녀상!
이름하여 동양 평화 소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