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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성남대리구 수진동본당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6-01-10 조회수 : 530

1900년 둔전말공소에서 출발
가난한 이 위한 성도신협 창립
유치원 통한 교육사업도 앞장

 



 ▲ 성남대리구 수진동성당 전경.

 
   1968년 급격하게 개발된 경기도 성남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반면 신앙의 역사는 유구하다.


   성남대리구 수진동본당(주임 황규현 신부)은 성남 지역에서 오랜 시간 신앙의 맥을 지켜온 공동체다.

   언제부터 성남지역에 신앙이 전래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광주의 천진암과 가깝고 이미 신유박해 때부터 남한산성에서 순교자가 난 점 등을 미뤄볼 때, 성남 지역 신앙의 역사가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해시기를 거치면서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성남 지역의 산으로 숨어들었다. 지금의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과 동원동 인근이 피신처로 전해진다.


   1900년 설립된 본당의 전신, 둔전말공소에도 병인박해 시기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산 것으로 추정된다. 구전에 따르면 신자들은 1880년대부터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서울 종현본당(현 명동본당)을 오갔다고 한다. 서울 백동본당(현 혜화동본당) 관할로 성사생활을 하던 공소 신자들은 1950년 4월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는 기쁨을 얻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만에 6·25전쟁이 발발하고 초대주임인 박지환 신부가 군종신부로 떠나면서 본당은 다시 공소가 됐다.


   1954년 서울 신당동본당 관할로 편입된 공소는 구산공소와 함께 규모가 큰 공소에 속했다. 신자들은 주일마다 공소예절을 거르지 않았고, 성월이 되면 매일 저녁에 모여 성월기도와 연도를 바쳤다. 공소 자체 주일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공소는 1962년 다시 둔전리본당으로 승격됐지만, 성당을 건립하고 정착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70년 대왕면(현 성남 수정구·서울 강남 일부) 일대 군 비행장 건설이 확정되면서 성당을 철거해야만 했다. 동시에 서울 지역 무허가 판자촌의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본당이 나서야 할 역할도 고민하게 된다.


   본당은 인보성체수도회의 탁아소 사업에 더불어 성당 신축을 진행하게 된다. 본당을 이전함에 따라 명칭도 성남본당으로 변경됐다. 본당은 1970년 성탄부터 수녀회의 탁아소 터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기 시작했고 1971년에는 성당 1층을 완공했다. 1978년과 1995년 성당을 증축·보수해나가면서 현재의 성당을 완성했다.


   성남시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본당 교세는 날로 성장해 단대동·성남동·신흥동·태평동본당을 분할해나갔다. 성남동본당을 분당하면서는 본당명을 수진동본당으로 개칭했다.

   지역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많은 만큼 가난한 이를 위한 활동에도 나섰다. 본당은 고리채와 생활고에 허덕이는 지역민들을 구하기 위해 1975년 본당 사제관에서 신용협동조합을 발기하고 같은 해 성도신협(현 성남중앙신협)을 창립, 신협운동을 주도했다. 현 성당 터전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한 탁아소도 ‘새싹 어린이집’에서 1991년 성체유치원으로 거듭하면서, 지역 어린이들의 보호와 교육에 앞장서오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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