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오늘도 역시나 땡볕이 내리쬐는 날이다. 그래도 아들 바오로와 나는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를 멈출 수가 없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나와 아들 바오로의 성지순례의 길을 막을 수 없는 열정이 있었다.
미리내성지를 찾은 나와 아들 바오로는 먼저 전대사를 얻기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중 신부님께서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에 친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리내성지 전담 류덕현(알베르토) 신부님께서 직접 유해를 손에 드시고는 순례로 찾은 신자 하나하나에게 친구하는 시간을 주셨다. 아들 바오로와 나는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말이 없었지만 바오로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성지는 참 넓었고 김대건 신부님의 묘소에서 한참 동안 침묵의 기도를 바쳤다. “주님의 뜻이 바오로를 통해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미리내성지는 신유박해(1801년)·기해박해(1839년)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어 살았는데, 밤이면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라고 불리게 되었다.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하신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미리내에 안장되면서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 그리고 조선교구 제 3대 교구장이자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 주교의 묘가 있으며, 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새남터에서부터 이곳으로 옮겨 와 안장하고 선산을 교회에 봉헌한 이민식 빈체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1976년, 수원교구에서 용인 지방에 산재해 있던 무명 순교자 17위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 내 수원교구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는데 그 중 1위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임이 밝혀졌다. 성지에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기념 성전, 79위 시복 기념 경당 등이 있으며, 미리내 성요셉 성당에 김대건 신부님의 성해인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다.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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