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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소식

공동체교구 장애인 선교 연합회 대림 피정 및 미사봉헌

작성자 : 홍보전산실 작성일 : 2017-12-06 조회수 : 1858



   교구 사회복음화국 장애인사목위원회 장애인 선교연합회(회장 유양재 스테파노‧영성지도 박태웅 토마스 신부)는 장애인 선교연합회(지체선교회, 시각선교회, 농아선교회, 지적, 자폐성 선교회) 회원과 가족 및 봉사자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2월 3일 교구청 지하 강당에서 대림피정을 실시했다.


   장애인 선교연합회는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수원관구 소속 김귀분(리나) 수녀를 초청하여 천주교 수덕서(修德書)인 판토하(Pantoja, D. 龐迪我) 신부의 ‘칠극(七克)’이란 주제로 모두 4강을 청강(聽講)하였다.


   리나 수녀는 제1강 칠극입문(七克入門)과 교만(驕慢, arrogance), 제2강 질투(嫉妬, jealousy)와 탐욕(貪欲, selfish gain), 제3강 탐식(貪食, gluttony, voracity)과 분노(忿怒, anger), 제4강 간음(姦淫, adultery)과 나태(懶怠, indolence)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리나 수녀는 강의에서, “오늘 여러분은 마음 속을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신체적인 조건은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되새기며,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정성스레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칠극에 대해 소개하며, “칠극의 내용은 칠죄종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로 하는데, 칠죄종이란 교만, 질투, 인색, 분노, 탐욕, 음란, 게으름으로 죄의 근원이 되는 ‘사악’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칠죄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칠극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면서, 요한카시아누스(360-436)의 8가지 악과 덕(탐식≠절제),(간음≠정결),(탐욕≠가난),(분노≠온유),(슬품≠기쁨),(나태≠열정,근면),(허영심≠진솔함),(교만≠겸손)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미사는 박태웅 신부 주례로 거행됐다.
   박태웅 신부는 강론에서 “오늘 피정 시간에 강의를 들은 칠극이란 내용은 쉽지 않은 내용이다. 앞으로는 이런 좋은 시간이 있을 때는 강의 시간만큼이라도 참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오늘 대림절 첫째 날 여러분을 위한 칠극에 대한 강의는 내안에서 일들에 대한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이것을 지키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볼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려면 바라보는 방향부터 바꾸어야 한다. 나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를 여러분 자신은 그들을 용서하고 배려하고 경청한다면 주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칠극(七克)이란 1614년 중국의 북경에서 출판된 책으로서 한문으로 쓰여진 400면의 수양서(修養書)이다.
지은이는 판토하(Diego de Pantoja, 1571~1618, 龐迪我) 신부로, 북경에서 활동하던 마태오 리치 신부를 보좌한 스페인 출신 예수회 신부이다.


칠극에서는 칠죄종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로 하는데,
‘교만’이란 분수에 넘쳐 영화를 바라는 것이며, 그 실마리는 많지만 네 가지로 모을 수 있는데, 첫째 선이 하느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나온다. 여기고, 둘째 선이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는 것이고, 셋째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넷째 남을 경멸해 자신은 뭇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질투’란 남의 복된 것을 근심하고, 남의 재앙을 기뻐하는 것인데, 남의 나쁜 점을 생각하고, 남의 잘못을 헐뜯고, 남에게 재앙이 생길 것을 바라는 이러한 악은 모두 질투라고 할 수 있다. 질투하는 이들은 빼앗을 것을 마음으로 삼아 남이 잘못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남이 행복한 것을 근심스럽게 생각한다. 큰 덕이나 명성은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질투하는 이들은 남들이 그것을 가지는 것을 시기하는데 이는 하느님을 시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탐욕’의 마음은 손아귀에 물건을 잡고 있는 것처럼 단단한데 이는 베풂으로 풀어야 한다. 인색한 이들은 언제나 아직까지 받지 못한 것을 바라고 있는데, 그들이 이미 받은 것이나 그들에게 그것을 준 이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몸도 가난하고 마음도 가난해야 가난은 그제야 덕이 되는데, 몸은 가난하더라도 마음은 욕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가난은 덕이 아니라 바로 근심인 것이다. 재능은 베풀수록 아름답고 또 늘어납니다. 재물에 인색한 이는 죽은 후에 그 재물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지만, 재능은 그렇지 않다.

‘분노’는 타오르는 불과 같으니 이 불은 참음으로 꺼야 하는데, 갑자기 성을 내는 것은 욱 하는 사람의 감정이다. 그러나 성냄을 쌓으면 사람을 죄에 빠뜨리게 되는데, 마귀들은 사람들이 성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욕설에 사나운 행동 그리고 남과 자신을 해치는 것이 모두 성내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인데, 분노는 여러 사람에게 옮겨져 서로 악으로 끌어당기며, 아무리 이치에 밝은 사람이라도 마음이 화를 내면 눈이 흐려져 앞을 볼 수가 없다.

‘음란’은 마치 물이 넘쳐나는 것과 같은데, 이는 마음을 곧고 바르게 하여서 막아야 한다. 음욕(淫慾)은 세찬 감정의 불길인데 이 감정의 불길은 그것이 한 번 일어나면 선(善)과 덕(德)에 대한 바람, 의로운 행실은 모두 잊게 된다. 사람의 슬기로운 행위를 막는 것으로 음란한 생각보다 더 심한 것은 없다. 음욕이란 처음은 사탕처럼 달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은 항상 괴로울 것이다. 마귀가 달콤함만을 보여주고, 괴로움은 숨겨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음란함을 버린다면 즐거움은 음란함의 즐거움보다 훨씬 크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나태함’이란 ‘대충 이정도쯤’에서 만족하는데서 나온다. 고민 없이 대충살고 대충 마무리 하면 결코 인생의 반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신앙적인 인생의 진정한 묘미는 즐기면서 대충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근면하면서 노력해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성취하는데 있는 것이다.


김연주 소피아, 최영길 베드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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