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이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는 한국인 처음으로 사제가 되고 순교까지 하게 되는데요.
사제가 되기 전, 신학생 김대건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요?
수원교구가 최근 개최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선 김대건 신부의 신학생 시절을 돌아봤습니다.
김형준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인 첫 사제이기 이전에 한국 교회 최초의 해외 유학생이었던 성 김대건 신부.
김 신부와 동료 최양업 신부의 신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수원교구가 지난달 28일 개최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인의 생애가 심도 있게 다뤄졌습니다.
특히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원재연 교수는 김 신부와 최 신부의 신학 교육을 조명했습니다.
한양에서부터 마카오, 필리핀, 상해와 요동을 거치며 13년 여 동안 이어진 최초의 조선신학교는 두 사제를 배출하며 지금의 신학교의 원형이 됐습니다.
<원재연 하상 바오로 /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를 배출한 조선신학교는 뒤이어 실시된 국내 도제식 사제교육과 (앵베르 주교) 국내 신학교 교육의, 배론 신학교의 크고 튼튼한 기초를 마련했으며 오늘날 한국 가톨릭 신학교의 모태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신학생은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와 교리, 신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피와 땀의 순교를 이뤄낸 사제들이지만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작은 죄들은 고해성사를 볼 필요가 없다. 자기 스스로 뉘우치는 것으로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는데 그렇게 교리를 가르치니까 '안 됩니다, 스승님. 작은 죄도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봐야 다시 성사도 받을 수 있고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이들을 납득시키는 게 너무 힘들다고…"
서양 음악인 성가를 배우는 것도 조선인에게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학생들을 교육하던 칼르리 신부는 "조선 소년들의 목소리가 매우 쉰 목소리이고 완전히 음정이 맞지 않는다"면서 "성가를 가르쳐 그것을 고쳐볼까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스승들은 신학생 김대건과 최양업에 대해 대조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리브와 신부는 서한을 통해 규칙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최양업 신부가 "조선 포교지를 위해 유익한 몸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한편 김대건 신학생은 "늘 위병과 두통과 요통을 앓고 있다"며 "조선인들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을까 두렵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이국땅에서 건강상의 어려움까지 겪었던 김대건 신부.
하지만 이내 건강을 회복해 열정과 신덕을 가진 조선인 최초의 사제로 거듭나게 됩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김대건 신부가) 에리곤호의 항해를 끝내고 나서 몸도 건강해지고 영혼도 너무 건강해져서 신학 공부를 다시 할 수 있게 돼서 너무나 기쁘다, 라고 그런 편지를 보고 있어요. 저는 그 시점을 성장통의 극복이라고 하는 그런 키워드로 설명하곤 합니다."
CPBC 김형준입니다.
cpbc 김형준 기자 | 입력 : 2021-11-03 02:00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