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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 잘 아시는 하느님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10-24 14:26:45 조회수 : 84

제가 보좌 신부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청년’ 한 명이 있습니다. 4년 전 어느 날 그 청년이 “신부님, 하느님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시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저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살아온 과정을 들어보니, 마냥 엉뚱한 소리만은 아닌 듯 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 스스로 신앙에 눈을 떠서 성당에 나왔고, 대학생 때는 신앙보단 세상이 주는 재미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이 알아주시기를 바라며 ‘창의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4년 전의 저에게 ‘하느님’과 ‘세상 물정’이라는 생각을 같이 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 그 청년은, 작년엔 그 뒤의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신부님, 이제 알겠어요. 하느님도 세상 물정을 아시긴 하더라고요. 아휴, 근데 쉽게 좀 알려주시지 하느님은 왜 매번 어렵게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로부터 다시 1년 후인 얼마 전 그 청년에게 이 얘기를 주보에 실어도 되는지 물었을 때, 그는 “하느님이 세상 물정을 아주 잘 아시더라고요.”라는 얘기까지 이어갔습니다. 그 청년이 지내온 시간을  지켜보며, 사람에겐 저마다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원의’가 있고, 그런 마음에 하느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시는 분’임을 떠올리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 예수님께 갔다.” 당시 사람들에게 ‘겉옷’은 기온이 내려가는 어두운 밤에 ‘이불’로도 사용했던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갔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예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또, 그는 예수님께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여기에서  ‘보다.’(άναβλέψω)라는 말은 ‘치켜본다.’ ‘위를 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게 해달라고 청한 것이 아니라, ‘위를 쳐다보게 해주십시오.’라고, 다시 말해 ‘위(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도 청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응답하시며,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바르티매오가 전보다 더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알려주십니다. 


때론, 하느님이 세상에 너무 ‘무관심’하시고, 나와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신다는 실망과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하느님은 그 누구보다 세상 물정을 잘 아시고, 우리의 눈을 위로 향하게 해주심을 전하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