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나서 베드로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저는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신학생 시절 이 말씀에 쓰인 ‘사랑’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의 '사랑'에 쓰인 단어는 ‘아가페’와 ‘필로스’ 두 개입니다.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 곧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필로스는 '형제애'와 같은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자, 다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질문을 바라볼까요?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 쓰인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곧 “너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는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쓰인 사랑은 '필로스' 사랑입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랐지만, 베드로는 인간적인 사랑,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한 번 더, 세 번까지 물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세 번째 질문에서 쓰인 ‘사랑’은 아가페가 아닌 필로스입니다. 무슨 마음이셨을까요? 이는 곧 베드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인간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베드로에게 양들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당신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당신께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가페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 계명이 나에게 너무 벅차고, 힘에 겹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겹습니다. 참을 수 없어 그저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보고 웃어주고,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잠깐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에게 필로스 ‘사랑’으로 바꿔 다가가셨던 예수님의 그 마음이 이제 ‘나’에게도 다가옵니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아가페가 힘들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벼운 사랑부터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머진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