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법은 옛 이스라엘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근동에 먼저 비슷하게 존재한 관습입니다. 옛 바빌론 임금들은 왕좌에 오를 때 빚 탕감과 종 해방을 골자로 하는 ‘해방 포고령(키툼 우 미샤룸)’을 내려, 백성 사이의 평등을 확립하려 하였습니다. 곧 자신의 선정을 미리 보여주어 백성의 마음을 사려 한 것입니다. 사회.경제적 상황 때문에 개혁이 필요할 때도 해방 포고령을 선포하였습니다. ‘키툼 우 미샤룸’은 성경의 ‘공정과 정의’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다윗과 솔로몬이 즉위 초기 실천하였다는 “공정과 정의”(2사무 8,15; 1열왕 10,9)가 이와 관련됩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에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을 이해할 실마리도 줍니다. ‘최후의 심판’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었느냐가 아닌, 가장 작은 형제에게 베푼 자비와 사랑이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고대근동에서 임금이 실천해야 한 공정과 정의(시편 72,1-4)와 관련됩니다. 온 세상 임금이신 하느님이 지상의 임금에게 ‘공정과 정의’를 바라시지만 이를 실현하지 못하자, 성자께서 직접 이루시리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정과 정의란 타인의 몫을 부당히 빼앗지 않는 것, 특히 수탈당하기 쉬운 약자를 착취하지 않는 것(예레 22,3; 에제 18,5-8 등)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궁핍한 이의 상황을 개선하고 착취자를 처벌하는 일도 포함(시편 72,2.4; 이사 11,4)됩니다. 따라서 공정과 정의는 ‘약자 보호’와 관련된 용어로서 사랑, 자애, 자비의 행위로도 표현되며 시편(103,17)과, 즈카르야서(7,9-10)에서는 ‘의로움’이 ‘자애’의 병행어로도 나옵니다.
생태계 전체로 보았을 때는 우리 인간이 임금과 같은 존재이므로, 최후의 심판은 창조주 하느님을 본받아 우리도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수탈당하기 쉬운 약자는 인간 외에 타피조물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인간이든 자연이든 상대의 몫이나 생명을 함부로 빼앗거나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말이 막연한 두려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세상 끝 날 주님께서 손상된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시리라는 예고입니다. 그래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해온 이들과 정당한 몫을 빼앗긴 이들에겐 구원의 순간입니다. 악인도 예수님을 주님이라 칭하며 그분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이 징벌의 성격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마태 25,41-45). 이를 감안하면 ‘최후의 심판’은 하느님의 속성인 “공정과 정의”(예레 9,23)를 바로 알고 실천하라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