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갑작스러운 교황직 사임 소식은 로마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고, 이후 많은 이가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기다렸습니다. 이슬비가 내리던 2013년 3월 13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아올랐고,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물었습니다.
“교회법적으로 교황에 선출된 것을 수락하겠습니까?”
“수락하겠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까?”
“프란치스코!!”
이렇게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교황명 선출 전통은 6세기부터 이어졌으나,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이 선택되었기에 많은 이에게 새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현재 교회의 덩치는 점점 비대해져 가고, 내·외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습니다. 교회가 방향성을 잃어버린 듯 보이는 이 시대에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 선택은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제시해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 선출 다음 날, 추기경 시절 자주 찾던 로마의 4대 대성당 중 하나인 “성모 대성전(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을 방문하셨습니다. 5세기에 건립된 성모 대성전은 서방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성당으로, 한여름에 눈이 내려 ‘로마의 눈’ 기적으로도 유명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방문은 평소 교황님의 성모 신심과 교황직 수행의 영적 토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또, 벨기에의 한 학회에서 만난 교리교사 부부가 “예수님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 성모님은 필요 없다.”라고 말했을 때, 교황님은 “가엾은 고아들!”이라며 탄식하셨다고 합니다. 이 일화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성모님이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직접 체험했습니다. 성모님의 ‘어머니’ 다운 눈길이 어둠을 밝히고 희망을 다시 피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눈길은 우리에게 신뢰를 심어 주고 한없는 자애를 전해줍니다. [...] 성모님은 결코 신앙생활의 장식품이 아닙니다. 성모 신심은 단순한 영적 예절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필수 요소입니다.” (자서전 『희망』 p95-96)
교황님은 재임 기간 동안 100번 넘게 성모 대성전을 방문하여 ‘로마 백성의 구원자(Salus Popoli Romani)’라 불리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항구한 기도는 ‘마리아 없이는 복음이 삶으로 녹아들지 않고 왜곡되어 하나의 이념이나 영성적 이성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어머니께 대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저는 그곳을 자주 찾습니다. 특히 교황으로서 사도 순방을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에도 꼭 들러,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고,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며, 제 모든 행보를 보살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는 성모님과 함께 할 때, 참 평화를 느낍니다.” (자서전 『희망』 p338)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성모님은 ‘어머니이시며, 참 평화를 주시고, 자애의 눈길로 바라보시는 분’ 이십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신앙의 기쁨을 알려 준 할머니와 가족, 그리고 매우 친밀했던 포촐리 신부님에게서 성모님에 대한 사랑과 의탁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랑은 로마교구의 334개의 성당과 개인 건물 안에 있는 성당까지 합한 약 900개의 성당 중에서 ‘성모 대성전’을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로 선택하는 동기가 됩니다.
“바티칸은 제가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집일 뿐,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니까요. [...] 제가 늘 의지하고 교황 재임 중에 백 번도 넘게 은총의 품에 안겼던 평화의 모후 곁에 잠들 것입니다.” (자서전 『희망』 p343)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안식처,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교황님도 한평생 수도자로, 사제로, 추기경으로, 교황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당신 마음의 안식처인 성모님 품에서 끊임없는 위로와 용기 또한 얻으셨을 것입니다.
한평생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곁에 묻힐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폐렴으로 힘들어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지막 모습을 뵐때면 걱정과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었지만, 평화의 어머니 곁에 잠드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행복한 분이십니다. 가난했으나 숭고했고, 불행해 보였으나 행복했던 분!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참 평화를 주시며, 우리를 자애의 눈길로 바라보시는 성모님 품에서 편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어머니의 자애로우신 눈길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어머니의 품에서 우리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