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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순교한 손선지 베드로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11-07 09:43:40 조회수 : 46

손선지(1820~1866)는 충청도 임천 고인돌(현 부여군 지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늦게 세례를 받았으나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손선지는 아버지에게서 교리 교육을 받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손선지는 성격이 온순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조선에 입국해 복음을 전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샤스탕 신부는 손선지의 믿음과 성실성을 보고 전교 회장직을 맡겼습니다. 그때 손선지의 나이는 불과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선지는 전주 지방 교우촌 대성동 신리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공소로 제공해 교우들이 모여 기도하고 교리를 배우게 했습니다. 그해 가을 추수 때 박해가 조금 뜸해졌으나 교인들에 대한 수색은 심했습니다. 손선지는 공소에서 교우들에게 말했습니다. “곡식을 키로 쳐서 검불과 분리하는 것처럼 천주께서도 박해 때 그렇게 하시는데 저 같은 사람도 천주께서 당신의 곳간에 받아주실까요?” 그는 그렇게 ‘순교의 뜻’을 밝혔습니다. 어느 날, 한 나무꾼이 손선지 집 앞을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서양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곧 체포되어 사형당할 테니 이 마을은 쑥대밭 되겠군.” 

손선지는 교우들과 함께 공소예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직감으로 포졸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손선지는 교우들에게 뒷문으로 피하라고 하고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포졸이 손선지를 체포했습니다. 손선지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체포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포졸이 “서양 종교를 믿는 죄인이라 체포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체포된 손선지는 끌려가다가 어느 주막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손선지의 어머니는 천주교에 대해 호감이 있던 마을의 관리를 만나 아들을 석방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관리의 청탁을 들은 포졸은 “그것은 죄인에게 달렸소. 죄인이 배교하면 석방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관리는 손선지에게 배교하라고 여러 번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손선지는 “배교는 절대 할 수 없소! 나는 이미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니 유혹하지 말고 가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손선지는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신문을 받았습니다. 관원은 공소에서 미사를 집전했던 서양 신부들의 거처를 대라며 심하게 매질했습니다. 또한, 천주교 서적이 있는 곳을 대라며 팔을 비틀어 뼈를 부러뜨렸습니다. 손선지는 지독한 고문을 견디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형장인 전주 서문 밖 숲정이로 끌려갔습니다. 망나니가 칼을 들었습니다. 손선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라고 기도했습니다. 망나니의 칼이 손선지의 목을 내려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