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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순례자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12-04 08:41:39 조회수 : 29

故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라는 주제로 “희망의 순례자”라는 표어를 제시하며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저마다 하느님의 품을 찾아가는 순례길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은 일 년에 세 번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파스카 축제와 주간절(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 맞갖은 횟수로 예루살렘 성전의 주님께 가서 충심을 표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에는 더 원초적이고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옛 성전은 원조들이 상실한 에덴 동산을 상징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전과 에덴 동산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주님께서 인간을 만나 주시던 장소였지만 죄 없고 정결한 상태여야 들어갈 수 있었고, 커룹의 존재도 공통됩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고,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모셔진 계약 궤에도 커룹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곧 원조들이 에덴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커룹들이 입구를 지켰듯, 지성소에서는 커룹이 상징적으로 자리하여 백성의 접근을 제한하는 구실을 하였습니다. 더구나 창세기 2장 13절에서 14절에 따르면 에덴에서 흘러나온 네 강 가운데 하나가 기혼인데, ‘기혼’은 예루살렘에 자리한 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성전 산 바로 아래 있어, 에덴 동산과 기혼 강을 떠올려줍니다. 


말하자면, 백성은 부분적으로나마 성전에서 에덴 동산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신약 시대에 교회의 신랑이신 예수님이 스스로를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지성소의 휘장을 갈라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에덴 동산이 우리에게 열린 뒤에는, 성전이 파괴되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징성이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 2장 20절에 나오듯 예수님 당신께서 성전이 되셨기 때문이며, 코린토 1서 3장 16절 등에 따라 우리 모두가 또한 성령을 모신 성전인 까닭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바로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입니다. 희년은, 땅을 잃고 자기 자신도 판 백성이 원래의 신분과 가산을 되찾아 돌아갈 수 있는 해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가 상실하였으나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고향은, 우리의 숨이 기원한 주님의 품입니다(창세 2,7). 코헬렛 12장 7절에서도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옛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현존을 성전 순례에서 구하였지만, 예수님이 바치신 한 번의 제사로 성전이 우리 안에 들어온 뒤에는 순례길이 예루살렘이 아닌 삶 안에서 동행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희년을 보람차게 마무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