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문득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느티나무처럼 넓고 든든했던 아버지의 등은 예전보다 야위었고, 칠흑처럼 검었던 머리는 소복이 내려앉은 하얀 눈처럼 하얗게 물들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의 순리에 자신을 맡겨야 하지만 연로하신 아버지를 통해 느껴지는 세월의 야속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지만, 자녀는 자신이 받은 위대한 사랑을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삶의 저변에 뿌리를 내리고 어엿한 고목으로 성장하기까지 주위의 무수한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한 인간이 나고 자라며, 존재를 꽃피울 수 있는 근본은 바로 가정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은 한 개인의 삶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녀는 부모라는 존재를 통해 성장하고, 부모도 자녀를 통해 성장합니다. 서로가 자신의 존재를 내어주며 존재의 의미를 찾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지내면서 하나의 존재를 이룹니다.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목적을 가정의 뿌리에서 찾는 것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이 있다면 영적인 가정도 있습니다. 바로 ‘신앙 공동체’입니다. 사제는 영적인 아버지이고, 그들에게 맡겨진 공동체는 성령으로 맺어진 가정입니다. 사제에게 교우들은 가족이고,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제는 교우들을 통해 존재 의미를 찾고, 성장합니다. 교우들은 사제가 전하는 말씀과 성찬의 양식으로 성장하며 존재 의미를 찾아갑니다.
때때로 사제로 살아가며 어떻게 사랑을 전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찾아오면, 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립니다. 묵묵히 앞서 걸어가시며 존재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어주신 젊은 날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교우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기보다, 곁에 서서 그들이 쉬어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냅니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장은 가정입니다. 존재가 존재를 만나 쉴 수 있는 곳도 바로 가정입니다. 서로의 존재 자체가 커다란 선물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존재는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