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아차린 동방의 박사들은 그분을 만나기 위해 자신들의 고장을 떠나 이스라엘을 찾아갔습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에 이르러, 그들은 자신들이 뵙고자 했던 구세주를 만났고, 그분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러고는 그분께 드리기 위해 가져온 예물들을 바치고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구세주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동방 박사들에게는, 그 여정 중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찾아올 수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구세주께서 오셨음을 알아차렸지만, 길을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혹은 그분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지만, 끝내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길을 돌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꼭 만나야 하는 것인가? 나중에 여력이 될 때 찾아가 보자.’라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공간’으로 다시 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는 길은 나섰지만, 구세주를 만나고자 했던 목적을 잊고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길로 향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만나야 하는 이유가 뭐지?’라는 망각이 ‘나한테 좋은 무언가를 얻어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구세주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지금 나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 나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구세주를 만나고자 했던 결심을 잊지 않았고, 결국 그분이 계신 곳에 이르러 그분을 뵙고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구세주를 만나고자 했던 이 동방 박사들의 결심을 지켜 준 원동력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에게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열망은 그들이 품었던 결심을 지켜 주었고, 그 결실로 구세주와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방 박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상’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주님의 집’에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구세주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겠다고 결심한 우리에게도 이 동방 박사들과 마찬가지로 ‘구세주와의 만남’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수많은 선택지가 펼쳐진 여정 위에서 구세주를 만나겠다는 결심을 끝까지 지켜낸 동방 박사들의 신앙을 기억합시다. 그들이 지녔던 신앙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께서 계신 곳으로 함께 걸어갑시다.